[오늘의 섹션 피플]조태권 광주요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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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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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교훈삼아 ‘명품 한식의 꿈’ 다시 꿉니다

외국음식만 일류 대접 해주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탈출 못해
술-그릇 모두 고급화시켜야… 막걸리잔 직접 디자인해 빚어

조태권 광주요 그룹 회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광주요 본사에서 고급 증류식 소주 ‘화요’의 새로운 병 디자인을 선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최근 소주 잔과 막걸리 잔도 직접 디자인했다. 변영욱 기자
조태권 광주요 그룹 회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광주요 본사에서 고급 증류식 소주 ‘화요’의 새로운 병 디자인을 선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최근 소주 잔과 막걸리 잔도 직접 디자인했다. 변영욱 기자
조태권 광주요 그룹 회장(62)은 지난달 28일 기자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한국 음식과 술에 관해 유달리 저렴한 가격을 주장하는 자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 그는 다음 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광주요 사옥을 100억 원대에 매각하고 이사 온 양재동 본사는 9층 건물 중 7층 한 개 층을 임대로 쓰고 있었다. 2년 전만 해도 100여 명이던 이 회사 본사 직원은 27명으로 줄었다. 수수한 회사 잠바 차림의 조 회장은 “사옥 팔고 감원해 빚을 해결했으니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광주요 그룹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고급 한식의 뼈저린 실패

6남매 중 막내인 조 회장은 1963년 부친 고 조소수 씨가 경기 이천시에서 창업한 광주요를 1988년 물려받아 국내 굴지의 도자 기업으로 키워냈다. 2003년 11월엔 강남구 신사동에 고급 한정식당 ‘가온’을 차렸다. 밑반찬에서 주 메뉴까지 최고급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 광주요의 고급 도자기에 담아낸 ‘명품 한식’이었다. 당시 조 회장의 자신감 넘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프랑스에 푸아그라(거위 간), 중국에 불도장이 있다면 한국엔 홍계탕이 있습니다. 한식을 고급 음식으로 키우기 위해 옛 궁중 음식을 명품 한식으로 개발했죠.” 한 그릇에 10만∼30만 원이던 홍계탕엔 홍삼, 오골계, 전복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조 회장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가온은 매달 2억 원 이상 적자를 내다가 결국 2008년 12월 폐업했다. 일본에서 고교,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코스모폴리탄’ 조 회장은 이 대목에서 역시나 할 말이 많았다. “조선시대 사농공상(士農工商) 의식은 음식이든 그릇이든 만드는 기능인을 천대했습니다. 이 의식이 현재까지 이어져 상류층은 외국 음식만 고급으로 치고, 서민들은 한식을 집에서 먹는 음식으로 치부해 버리니 이게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내가 앞장서 한식을 고급화하면 남들(손님들)도 따라올 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착각이요,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 다시 시작하는 ‘한식의 세계화’

조 회장은 주저앉지 않았다. 지난해 현장경영으로 복귀해 몸소 강도 센 구조조정을 했다. 지난달엔 2005년 내놓았던 고급 증류식 소주인 ‘화요’(알코올 도수 41도, 25도, 17도 세 종류)의 병 디자인을 새롭게 바꿨다. 원통의 병 형태와 ‘화요’의 서체가 모두 힘 있다. 41도 화요는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만찬 테이블에 칵테일 형태로 올랐다. 조 회장은 “한식이 고급으로 인정받으려면 함께 곁들이는 술과 그릇이 모두 고급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 광주요 그릇을 ‘클래식 라인’과 ‘모던 라인’으로 분류해 내놓을 예정인 그는 미국 내파밸리의 프랑스 식당 수석 조리장인 한국계 미국인 코리 리 씨가 쓸 ‘코리 리 라인’도 만들었다. 최근엔 소주잔과 막걸리 잔도 직접 디자인해 공장에서 구워냈다.

와인잔을 닮은 흰색 막걸리 잔 속엔 도자 볼이 들어 있어 잔을 가볍게 흔들 때마다 ‘젱그렁’ 청명한 소리가 났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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