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선전했지만 원화절상 - 교역조건 악화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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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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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치거 前세계은행 부총재 - 박윤식 조지워싱턴대 교수 대담

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소재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회의실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대니 라이프치거 전 세계은행 부총재는 “미국의 고실업률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며 경쟁력을 상실한 자동차 부문의 일자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윤식 교수는 “세계경제가 완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면서 “W자 형태의 더블딥을 막으려면 국제적인 금융개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소재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회의실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대니 라이프치거 전 세계은행 부총재는 “미국의 고실업률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며 경쟁력을 상실한 자동차 부문의 일자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윤식 교수는 “세계경제가 완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면서 “W자 형태의 더블딥을 막으려면 국제적인 금융개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내년 세계경제는 경기침체의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것인가. 동아일보는 국제금융 분야의 권위자 대담을 통해 세계 금융위기 1년의 평가와 새해 전망,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 등을 짚어봤다. 4일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회의실에서 1997년 한국 외환위기를 비롯해 세계의 주요 금융위기 대책을 주도해 온 대니 라이프치거 전 세계은행 부총재와 조지워싱턴대에서 22년째 국제금융을 가르치는 박윤식 교수를 만났다.》美 실업사태 돌파구 안보이는데
오바마 증세 집착해 투자에 찬물
신흥국 비해 더디고 허약한 회복


―금융위기 1년을 보내는 시점에서 세계경제의 회복을 평가한다면….

▽라이프치거 전 부총재=한국 브라질 인도 등이 V자 형태의 빠른 회복을 보인 반면에 미국은 U자 형태의 더딘 회복을 보이고 있다. 미국경제도 회복이 시작됐지만 허약한 회복으로 규정할 수 있다. 소비자와 산업계가 모두 불안심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실물경제의 회복도 더디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유의 경기침체라는 벼랑 끝에 몰렸지만 최악의 상황은 막았다는 점에서 B+ 정도로 평가하고 싶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2%대의 저성장을 계속해 왔고 경기회복도 비교적 양호하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을 위협으로 간주하는 유럽중앙은행이 섣부른 출구전략을 사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회복세가 늦어질 위협이 있다.

▽박윤식 교수=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번까지 11차례 경기침체를 경험했다. 이전 침체 종료 후 경제성장률이 6, 7%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번 경기회복 속도(성장률 2% 정도)는 상당히 더디다. 미국의 경제회복 점수에 B―를 주고 싶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의 위기대처는 효과적이었나.

▽박=미국 정부의 초기 대책은 혁명적이었다. 금리를 0%로 낮춘 것에 그치지 않고 구제금융 조치, 경기부양책 등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음으로써 최후의 투자자 역할을 잘 수행했다. 아무도 기업어음을 사려 하지 않을 때 과감한 행동에 나섰고 재무부 발행 국채도 매입함으로써 미국경제가 1930년대식 대공황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다만 미국 정부가 월스트리트를 돕는 데 너무 우호적이었고 구제금융 지원의 조건이 너무 관대했다는 점은 비판받을 수 있다. 거대 금융기관에 적절한 고통을 부과했어야 했다.

▽라이프치거=동의한다. 1982년 금융위기 상황에서 칠레 정부도 미국처럼 막대한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하지만 막대한 양의 은행주식에 엄격한 조건을 달아 자금대여를 했고 10∼20년 뒤 주가가 오른 후 시장에 처분해 국민에게 큰 수익을 돌려줬다.

―미국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라이프치거=처음에 일시적이거나 마찰적 실업으로 시작된 고용불안이 영구적인 실업으로 고착됐다. 당분간 고실업은 극복되기 어려울 것이고 미국이 경쟁력을 상실한 자동차 부문 일자리가 돌아오기는 어렵다. 일자리를 빼앗기니 소비가 일어날 수 없고 또한 소비가 없으니 산업계도 투자할 여력이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근본적인 접근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 보조금이나 세금을 감면하는 방식으로는 재정적자를 가중시킬 뿐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

▽박=실업 확대의 근본 원인을 두 가지 면에서 보자. 국제적 측면에서 볼 때 미국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내는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상에 나서지 않고 있어 미국 제조업 분야의 실업률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일자리 창출에 ‘다걸기(올인)’하기보다 여전히 건강보험 개혁, 기업에 대한 증세정책 등 보수-진보 대립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 악재다. 내년 세금인상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미국의 중소기업들은 선뜻 일자리 창출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라이프치거=환율문제에서 중국 정부의 태도는 유감스럽다. 과거 미국의 대중 무역역조의 원인은 중국의 수출과 더불어 미국 소비자들의 과소비였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들이 저축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원인은 명확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도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자국의 화폐를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차원에서 직면한 문제점을 진단해 달라.

▽박=세계경제가 완전한 회복으로 가기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W자 형태의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 현상을 맞을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철저한 금융규제 개혁을 단행해야 하며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

▽라이프치거=아직은 심각하지 않지만 실업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자유무역이 위축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중국이나 인도 등 신흥국들은 미국이 주도해 왔던 개방된 시장존중의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보호주의적, 민족주의적 성향을 드러낼 경우 현재의 경제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소지가 크다.

G20 의장국인 한국이 앞장서서
보호무역 득세 분위기 차단해야
브라질-중국 끌어들이는게 관건

―한국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경기회복을 한 비결은….

▽라이프치거=과거 미국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한계를 넘어 무역시장을 다변화했고 10년 전 외환위기 극복으로 다져진 금융 분야의 체질개선, 신속한 상황진단과 정확한 대책수립에 나선 정부의 역할 등 3박자가 잘 맞았다.

▽박=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경쟁국에 비해 수출 면에서 선전했다. 무역협회의 발표를 보면 한국의 총수출액은 지난해 11위에서 8위로 부상했다. 또한 정부의 신속하고 과감한 경기부양책으로 국내소비를 진작할 수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경제회복 속도가 가장 빠르지만 낙관만 하기는 어렵다. 원화 평가절상이 이뤄지고 있고 교역조건과 수출채산성도 계속 악화되고 있다. 올 3분기 경제성장률 2.9%도 재고조정 등에 따른 효과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유치하는 한국에 조언을 한다면….

▽라이프치거=매우 좋은 기회이지만 의장국으로서 어떤 의제를 선점하고 구체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브라질 중국 등을 끌어들여 자유무역의 증진과 관련한 구체적인 성과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20년 이상 세계은행에서 종사해 온 사람으로서 저개발국의 발전도 다뤄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G20의 구성을 볼 때 개발도상국이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국이 이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후변화나 녹색성장, 청정기술 등의 분야를 검토 가능한 어젠다로 제시하고 싶다.

▽박=G20 정상회의 개최 시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화합을 이끌어 내 진전된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회의를 통해 한국을 알릴 수 있을지는 어떤 중요한 합의를 이끌어 내느냐가 관건이다.

▽라이프치거=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전망은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내에 자유무역이 일자리를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정치적으로 적절한 타이밍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대니 라이프치거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국제경영)
△세계은행 부총재(빈곤 감소 및 경제관리 담당·2004∼2009)
△미국 브라운대 박사(경제학)
△주요 경력: 세계은행 내 경제학자 및 경제전문가 1000명 네트워크 수석. 1995년 아르헨티나 금융 구조조정 프로그램 주도,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국

○ 박윤식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국제금융)
△한미경제연구소(KEI) 고문
△미국 하버드대 박사(국제금융), 조지워싱턴대 박사(경제학)
△주요 경력: 세계은행 선임 이코노미스트.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
아시아개발은행(ADB)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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