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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27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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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초 롯데백화점 패션MD 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경쟁업체인 현대백화점 영패션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경쟁회사 패션 바이어가 왜 전화를 했지’라는 의구심도 잠깐 용건을 들은 롯데백화점 이애나 계장(28·여)은 깜짝 놀랐다. “두 회사가 손을 잡고 같이 여성복 브랜드를 만들어 봅시다.” 롯데백화점 측은 발칵 뒤집혔다. 백화점 의류매장은 입점 브랜드 가짓수를 놓고 서로 싸운다. 남보다 하나라도 더 많은 브랜드를 확보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기에 현대 측의 이런 제안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이 계장은 “당시 두 백화점에서 함께 만든 브랜드를 같이 생산해 판매하자는 제안이 신선하게 느껴졌다”며 “원가 측면에서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해 1월은 경기가 최악이던 시점이어서 유통망을 줄인 저가(低價) 브랜드의 필요성도 절실했다. 두 백화점의 물량을 합치면 가격 경쟁력도 있었다. 양사의 두 팀은 내부 논의 후 공동 브랜드 출시에 합의했다. 이제 회사를 설득할 차례였다.
현대백화점 담당자 김태원 과장(36)은 “백화점 자체 브랜드는 다른 곳과 차별화하기 위해 만드는 것인데 왜 하필 경쟁사와 손잡느냐는 사내 반발이 많았다”며 “대량 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도 중요했지만 역량을 합쳐 ‘제대로 된 자체 여성복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다”고 설명했다.
자존심보다는 효율을 앞세워 결국 사내 최고위층까지 설득한 이들은 이후 7개월간 ‘한 팀’으로 일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모든 사람이 참석해 회의하고 장문의 e메일도 여러 차례 오갔다. 생산업체 선정에서 디자인 작업, 제품 품평까지 공동으로 진행했다. 롯데 측은 화려한 색상의 기본적인 여성복을 선호했고 현대는 수수한 색의 ‘트렌디한’ 여성복을 원했지만 서로 의견을 절충해 수수한 색상의 기본적인 여성복으로 제품 특성을 잡았다. 김 과장은 “각자 다른 회사, 더구나 최대의 경쟁업체지만 공동의 목적을 위해 같이 제품을 품평하고 의견을 들었던 점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들의 공동작업이 28일 세상에 나온다. 백화점 업계 1위인 롯데백화점과 2위인 현대백화점이 함께 만든 여성용 브랜드 ‘퍼스트룩(1st Look)’은 28일 롯데백화점 4개, 현대백화점 6개 등 총 10개 백화점 매장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백화점들이 자체 브랜드를 공동으로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퍼스트룩은 제품 품목이 6종류로 많지 않아 특별 매장 형태로 판매된다. 공동작업을 이끌어 낸 두 명의 바이어는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해 나중엔 개별 매장까지 함께 낼 수 있기를 바란다”며 활짝 웃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