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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14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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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10시 반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조립2라인. 이유일 박영태 공동관리인이 서 있는 앞으로 윤기 흐르는 검은색의 대형 세단 ‘체어맨 W’가 천천히 미끄러져 왔다. 5월 노조가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간 지 84일 만에 처음으로 이날 쌍용차가 다시 만든 차였다. 6일 교섭 타결로 점거 농성이 풀린 후로는 꼭 일주일 만이다.
6일 극적으로 파업이 끝났을 당시 회사 측은 생산 재개에 2∼3주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쌍용차 직원들은 비가 내리는 주말에도 공장에 나와 청소를 하며 생산을 준비했고, 일주일 만인 13일 7개 차종 모두를 다시 만드는 저력을 보였다.
평택공장 근무자 2800여 명은 이날 오전 본관 앞에 모여 새 출발을 다짐했다. 이렇게 많은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회를 연 것은 쌍용그룹 시절 이후 몇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긴 파업 기간 공장 안팎에서 얼굴이 까맣게 탄 직원들은 설레는 표정이었다.
이날 특별공로상을 받은 ‘쌍용차를 사랑하는 아내들의 모임’ 대표 이순열 씨(47)는 “직원 부인 300여 명이 앞으로 전국에서 쌍용차 홍보와 판촉 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판매대리점협의회 이낙훈 대표는 “차를 잘 만들어주시리라 믿고 후회 없이 한번 팔아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들뜬 분위기가 공장 곳곳에 남은 파업의 상처를 다 지우지는 못했다. 본관 유리창들은 볼트 새총에 맞아 깨진 상태 그대로였고, 기둥과 공장 안 도로에는 스프레이로 쓴 파업 구호와 욕설이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노조가 불태운 ‘카이런’ 차체는 일부러 본관 앞에 그대로 전시해 뒀다. 쌍용차는 이번 사태를 잊지 않기 위해 ‘파업 백서’를 만들 계획이다.
공장을 떠날 때 한 직원이 기자에게 다가와 “많은 고객들이 쌍용차 제품의 불량률을 우려하겠지만 그런 염려는 안 해도 된다고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신차도 없고 브랜드 이미지도 나빠진 쌍용차를 살릴 길은 품질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평택=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금속노조 반대하더라도…”
GM대우차 노조, 민노총 승인 안받고 임금동결 조인식▼
GM대우자동차 노조가 13일 회사와 임금협상 조인식을 갖고 올해 노사 교섭을 최종 마무리했다. 하지만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GM대우차 노사의 임금협상 타결안을 승인하지 않기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금속노조는 올해 기본급 4.9% 인상 등의 지침을 세웠으나, GM대우차 노사는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을 동결하는 내용으로 올해 임금협상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GM대우차를 포함해 현대·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노조는 금속노조 산하에 기업지부 형태로 돼 있다.
GM대우차 노사는 지난달 17일 임금동결과 고용안정을 내용으로 하는 임금협상안에 잠정 합의한 뒤 같은 달 21, 22일 조합원 투표에서 이를 66.3%의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파산하는 등 경영 환경이 나빠진 데 따라 노사가 한발씩 양보한 결과였다. 하지만 금속노조는 “‘선(先) 중앙교섭 체결, 후(後) 개별 사업장 교섭과 기본급 4.9% 인상 등 노동조건의 후퇴 없는 교섭 체결’이란 원칙에 어긋난다”며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금속노조는 지침을 따르지 않은 GM대우 지부에 대해 징계 여부를 검토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측은 “상급단체의 원칙을 밝힌 것으로 개별 사업장의 ‘뒷다리’를 잡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며 “불승인이 아니라 미승인이라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노동부 관계자는 “산별노조가 아직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급단체 노조의 원칙을 개별 사업장 노조가 어긴 적은 이전에도 자주 있었다”며 “이런 경우 상급단체가 중앙 교섭을 끝낸 뒤 일괄 처리해주는 것이 관례”라고 설명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기아차 사측 교섭위원 20명 일괄사표
“파업책임” 해명에 “임단협 시간 벌기” 해석도▼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지부(기아차 노조)가 임금 및 단체협상 문제로 19년 연속 파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 회사 서영종 사장 등 사측 교섭위원 20명이 최근 일괄 사직서를 제출했다. 기아차는 13일 “서 사장 등 교섭위원들이 임단협을 조기에 끝내지 못하고 파업이 장기화된 데 책임을 지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기아차 노조는 임단협이 난항을 겪자 올 6월 30일부터 부분 및 전면파업을 벌여왔다.
경영계와 노동계에서는 ‘사측 교섭위원 전원 사직’ 카드가 워낙 전례 없는 일이어서 그 배경을 놓고 구구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기아차는 19년 연속 파업을 할 정도로 노사 분규가 일상화된 곳. 여기에다 올 상반기(1∼6월)에 순이익이 444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10억 원)보다 7배 이상으로 오르는 ‘깜짝 실적’을 냈다. 비록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크지만 사장 이하 주요 간부진이 사표를 낼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같은 계열인 현대자동차 임·단협 결과를 보고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현대차와 기아차는 2007년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임·단협 수순을 밟았다. 현대차가 먼저 타결하면 기아차가 뒤따랐다. 임금 인상액도 비슷했다. 하지만 2007년 기아차가 먼저 타결했을 때는 상황이 달라졌다. 기아차가 정액 기준으로 7만5000원 오르는 데 그친 반면 현대차는 8만4000원이 인상됐다. 이 때문에 당시 기아차 노조에서는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현대차는 6월 중순 윤해모 노조지부장의 사퇴로 임·단협이 중단된 상태다.
기아차 측은 “현대차 노사가 임·단협을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을 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서 사장 등 교섭위원 20명의 사직서는 이날 현재 수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