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전망대]한국경제와 사교육비의 치킨게임

  • 입력 2009년 7월 27일 02시 57분


지난달 미국 출장길에 친구 한 명을 만났다. 서울에서 괜찮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다 사업 실패로 올해 초 이민을 떠난 친구였다. 얘기를 들어 보니 그도 한국을 휩쓸고 있는 사교육 열풍의 희생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가 거액을 들여 강남의 한 아파트 밀집지역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연 이유는 딱 하나였다. 주민의 소득 수준이 높기 때문에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실패의 이유를 단순히 불황 탓으로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답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 있었다. 인근 주민들이 중산층 이상이지만 정작 레스토랑에서 소비할 여유 자금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은 것이다.

그 친구가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가계(家計)의 목적별 최종 소비지출’을 미리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5.1%로 곤두박질쳤지만 교육 지출은 10조1707억 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고치였다. 오락 문화와 외식비 등 모든 지출이 줄었지만 교육비 지출만 늘어난 것이다. 교육 소비는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생산과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가깝게는 동창 친구의 이민과 기러기 아빠의 불어나는 마이너스통장, 교육비 때문에 더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후배 등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이로 인한 내수 소비의 부진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인 개인저축률과 출산율은 당연한 경제 현상이다.

그나마 긍정적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인적자본 투자로서의 효과도 크지 않다. LG경제연구원은 수학과 과학 성적의 합과 GDP 대비 교육투자비의 비율을 갖고 투자대비 성과를 계산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사교육비를 포함한 한국의 교육투자 효율성은 20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정부는 내수경기를 살리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한국경제의 ‘블랙홀’로 자리 잡은 교육 문제를 언급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사교육비 절감 대책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올 상반기에 열린 15차례의 위기관리대책회의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니 더는 할 말이 없다.

경영학 등에 자주 사용되는 ‘치킨게임(chicken game) 이론’이 있다. 이 게임은 두 명이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다. 핸들을 꺾지 않으면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모두 파멸하고 만다. 딱 떨어지는 비유는 아닐지라도 ‘과도한 교육비 지출’과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두 자동차가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24일 발표한 교과목 축소는 교육비 지출의 핸들을 조금 꺾는 효과를 낼지도 모른다. 정치권 등 여기저기서 그 핸들을 꺾으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견실한 성장이라는 큰 틀에서 보지 않는다면 이는 미동에 그칠 수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 두 자동차가 정면충돌해 파국에 이르는 게임 결과가 나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박현진 경제부 차장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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