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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7월 4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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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한국투자증권은 9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지식경제부의 ‘녹색성장펀드’ 운용사로 선정됐다. 정부가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꼽는 녹색산업 분야의 유망기업 지분에 투자해 수익을 낼 운용사로 뽑힌 것이다. 하지만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운용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기한 내에 투자자금 1000억 원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측은 “정부로서는 녹색성장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투자자들은 그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올해 초 신·재생에너지, 그린수송시스템, 탄소저감에너지 등 녹색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정하고 이를 육성하기 위해 민관(民官)의 적극적인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자금줄 역할을 해야 할 투자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제 겨우 씨를 뿌리기 시작한 녹색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너무 리스크가 크고 정부가 내세우는 녹색성장의 개념도 모호하다는 것이다.
올 상반기에 유망 녹색기업에 투자하는 5000억 원 규모의 사모펀드(PEF)를 내놓을 예정이었던 산업은행은 이를 하반기 이후로 연기했다. 산은 측은 “녹색산업이 워낙 태동기라 투자자를 모으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투자대상 기업을 찾는 것도 문제다. 투자처 물색을 해본 이들은 국내 녹색산업이 ‘양극화’돼 있다고 지적한다. 자체 자금조달이 가능한 대기업과 사정이 어려운 영세기업으로 나뉘어 있고, 중견기업은 없다는 것이다. 영세기업을 지원하자니 투자위험이 커 선뜻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가 나타나질 않는다.
녹색기업에 투자하는 주식형펀드도 돈이 안 모이기는 마찬가지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설정된 지 한 달 이상인 녹색펀드 13개의 설정액은 총 165억 원에 불과하다. 제로인 이수진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녹색산업이 ‘장기 트렌드’가 될지, 아니면 ‘단기 테마’에 그칠지 불확실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이 녹색사업에 투자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과거 추진됐던 녹색사업의 성과가 부진했기 때문이다. 에너지관리공단은 2007년 한국투신운용을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투자하는 운용사로 선정했다. 한국투신운용은 투자자금을 모으기까지 1년이 걸렸다. 당초 1200억 원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150억 원만 모였다. 동양투신운용은 지난해 탄소배출권에 투자하는 공모펀드를 내놓기로 했지만 1년이 넘도록 펀드가 안 나오고 있다. 이 회사 김두환 글로벌자산운용팀장은 “탄소 감축의무는 몇 년 후 국내에서 중요한 이슈가 될 테지만, 아직 국민들이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해 관심이 적은 상태”라고 말했다.
국내 녹색산업에 대한 시장의 미지근한 반응은 산업 초기단계에 으레 겪는 ‘성장통’이라는 의견이 많다. 금융연구원 구정한 연구위원은 “정보기술(IT) 산업도 처음부터 잘된 것은 아니다”라며 “처음에 돈이 안 몰린다고 실패한 것으로 보지 말고 장기적으로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녹색산업의 비전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녹색금융이 발달한 네덜란드는 정부가 환경에 영향을 줄 녹색 프로젝트에 대해 ‘녹색인증’을 해준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은행은 저리(低利)에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공급한다. 투자자들의 수익률이 시장 평균수익률보다 낮은 점을 감안해 네덜란드 정부는 자본이득세와 소득세 일부를 감면해주는 투자 유인책을 마련했다.
자본시장연구원 노희진 선임연구위원은 “녹색산업은 투자 기업만 잘 고르면 큰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초기 리스크 때문에 돈이 안 모이는 만큼 정부가 투자 인센티브를 주는 등 과감하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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