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시장에도 '알파 걸'? 비정규직 시대의 슬픈 자화상

  • 입력 2009년 4월 25일 19시 29분


일하는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는 통념은 20대에서만은 예외다. 통계청 '3월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남성 취업자수는 174만 4000명, 여성 취업자수는 197만 9000명으로 23만명 정도 차이가 난다.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수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고용률'도 20대 여성이 앞선다. 20대 여성 고용률은 57.6%로 20대 남성의 고용률 56.2%에 비해 1.4% 포인트나 높았다. 특히,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를 덮치면서 실업률이 급증하기 시작한 지난해 12월 이후 4개월간 20대 여성의 고용률은 20대 남성의 고용률을 계속 앞질렀다. 2000년만 해도 20대 여성의 고용률이 남성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뒤져 있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반면 다른 연령대에서는 여전히 남성 고용률이 여성 고용률을 30% 가량 앞선다. 3월 고용률을 보면 30대 남성은 89.%, 여성은 52.1%였고 40대는 남성이 90.2%, 여성이 63.6%, 50대는 남성이 84.2%, 여성이 55.6%, 60대 이상은 남성이 48.9%, 여성이 25.1%를 기록했다. 고용대란의 와중에 왜 20대 여성들이 일터에서 약진하는 것일까?

● 초혼 연령 늦어져 경제활동기간 길어져

고용률은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로 남성의 경우 군인, 공익근무요원을 빼고, 여성의 경우는 전업 주부를 빼고 계산한다. 따라서 남성은 군복무처럼 취업을 할 수 없는 비율이 일정하지만, 여성은 초혼 연령이 늦어지는 경향 때문에 취업상태인 사람이 늘어나 고용률이 높아졌다는 것.

통계청은 "여성들의 초혼연령이 지난해 28.3세로 높아지면서 임신,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는 시기가 30대 초반으로 늦춰졌다"며 여성의 취업자수가 늘어난 이유를 분석했다.

또한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참여 기회가 많아지면서 취업 시장에도 '알파 걸'들이 본격 등장한 결과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N식품업체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하는 서 모씨(36)는 "기업 문화가 보수적이고 영업직이 많아 여성을 선호하지 않는데도 3년 전부터 여성 신입사원의 비율이 30%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여성 지원자들은 이력서의 스펙도 뛰어나지만 면접 준비가 철저해 면접관들이 감탄할 정도라고 했다.

취업포털 '커리어'에서 채용 동향을 분석하는 문지영 씨는 "여성들이 자기표현 능력이 월등해 자기소개서 작성이나 면접에서 강점을 보인다"며 "남녀 구별 없이 능력 위주로 채용하는 분위기가 일반화 된 최근 3~4년 동안 여성 채용이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 경기 침체로 비정규직만 늘어 여성 고용 활발한 탓도

'알파 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지난해부터 여성 고용률이 남성을 앞서기 시작한 현상을 설명하기엔 여전히 미흡하다. 이 같은 단기적 변화는 비정규직이 급증하는 고용 시장의 구조적인 변동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보다 여성 종사자가 많은 '소프트 잡'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경기 침체기에 늘어나는 일자리"라며 "전통적인 남성의 일자리에 여성이 진출한 결과로 고용률이 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2008년 상장기업 350개 회사의 채용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총 인원 1만3799명 가운데 여성은 20.1%인 2770명뿐이었다. 여성을 우대한다는 채용 공고를 내세우는 업종은 주로 보험회사의 전화영업, 가구회사의 판매사원, 화장품 회사의 피부 관리사 등 서비스 직종이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 형태가 불안정해지고 고용기간이 짧아지면서 출산, 육아 등 여성을 장기 고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적어졌다"며 기업들이 굳이 남성 고용을 선호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2~3년 단기로 보면 여성들의 생산성이 낫기 때문이다. 장연구위원은 "여전히 정규직 일자리는 남성들 위주이고 '알파 걸'들 조차 공공부문 정규직에 치우쳐 있다"고도 지적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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