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열린 기업실적… 호전인가 착시인가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56분


예상밖 선전에 실물 회복 기대감 솔솔

“각국 집중 지원 결과” 경계론 많아

■ 국내외 대기업들 어닝시즌 중간점검

17일(현지 시간) 미국의 씨티그룹은 올 1분기(1∼3월) 15억9000만 달러의 순익을 냈다고 밝혔다. 최근 2년간 가장 큰 규모의 흑자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거대 금융회사가 이처럼 좋은 실적을 낸 것은 호재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이날 씨티그룹의 주가는 오히려 9% 폭락했다. 시장에서 과연 부실 자산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된 것인지, 회계상 착시가 아닌지 논란이 분분했기 때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에도 불구하고 이런 흐름이 2분기에도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시장을 지배했다”고 보도했다.

국내외 대기업들의 어닝(earning·실적발표) 시즌이 한창이다. 이 중에서도 시가총액이 큰 대기업들의 경영실적은 시장에서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해 1차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실물경제에 얼마나 전염됐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 지금까지 발표된 실적을 수치로만 보면 일단 합격점을 줄 만하다. 그러나 이번 실적은 경기부양책과 자금지원 등 각국의 ‘집중관리’를 받은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 수치는 호전

이번 실적 시즌의 출발은 국내와 해외 모두 산뜻한 편이다. 지난주 골드만삭스는 1분기 16억6000만 달러의 순익을 냈다고 발표했다. 당초 예상치를 넘은 것은 물론이고 전년 동기보다도 13%가량 늘었다. JP모간체이스가 발표한 1분기 순익도 21억4000만 달러로 월가 전망치를 웃돌았다. 이번 주에 확정 실적을 보고할 예정인 웰스파고는 이달 초 30억 달러의 순이익을 낼 것이라고 잠정 발표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1분기 실적에 대해서도 시장은 “그런대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포스코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3700억 원으로 7년 만에 가장 적었다. 하지만 영업손실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다. 신세계는 경기침체 중에도 오히려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늘어났다. LG디스플레이는 16일 발표한 1분기 영업손실이 4500억 원으로 지난해 4분기보다도 늘어났지만 최근 해외 수요 증가로 2분기부턴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앞으로 나올 기업들의 실적 전망도 밝은 편이다. 지난해 4분기 최악의 실적을 낸 삼성전자는 올 초만 해도 1분기 70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낼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최근 증권가에선 소폭 흑자 전환을 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신영증권은 20일 보고서에서 “LG전자의 깜짝 실적이 기대된다”며 1분기에 33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 내실은 글쎄

실적 시즌의 하이라이트는 이번 주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24일), LG전자(21일), 현대자동차(23일)가 예정돼 있다. 미국도 모건스탠리(현지 기준 22일), 코카콜라(현지 기준 21일) 등이 어닝 서프라이즈를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이런 실적개선 행진은 실물경기 회복보다는 다양한 특수 상황이 맞물린 결과라는 점에서 아직 전문가들 사이에선 경계의 목소리가 높다. 우선 한국 기업들은 1분기에 고환율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 초반까지 내려간 지금 상황에서 원화가치가 더 올라가면 가격경쟁력이 다시 떨어질 우려가 크다. 미국 금융회사들의 선전도 회계 기준 완화와 미국 정부의 각종 지원책을 등에 업은 것이라 근본적인 체질개선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가 많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요즘 실적 발표를 놓고 근본적인 회복인지, 숫자놀음에 불과한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며 “워낙 시장의 기대치가 낮아진 상황이라 조금만 잘해도 많이 개선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앞으로 실적이 계속 좋을지는 2분기 이후를 지켜보면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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