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선진국, 신흥개발국 혁신에 눈 돌리다

  • 입력 2009년 3월 28일 03시 03분


■ DBR 리포트 - 세계적 기업들의 불황기 ‘벤치마킹 생존전략’

중국-인도 등 소비자들 가격 대비 만족도에 민감

기업들 가격 경쟁력 뛰어나

선진국, 고가전략 버리고 비용구조 혁신 나서야

“불황기에는 신흥개발국 기업의 지혜를 배워라.”

경영의 고수로 알려진 선진국 기업이 이제는 신흥개발국 기업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는 ‘도발적’ 주장이 나왔다. 피터 윌리엄슨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최신호(3월호)에 실린 기고에서 “불황기에는 비용 혁신을 통해 고객가치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신흥개발국 기업을 벤치마크하라”고 조언했다.

그 이유는 세계 경제가 점점 ‘가격 대비 가치(value for money)’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닥친 불황은 물론이고 최근 몇 년간의 소비시장 흐름도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소득 양극화로 지난 10년 동안 상위 20%를 제외한 가계의 구매력이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작아졌다. 이것이 바로 소형차와 할인점의 매출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이유다. 게다가 상대적 소득이 낮은 편인 신흥개발국 소비자들은 기본적으로 가격 대비 가치에 매우 민감하다.

필자들은 가격 대비 가치가 불황기 이후 산업계의 순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에 따르면 1930년대 대공황 때 경쟁업체를 누르고 업계 1위에 올라선 회사들(GE, 켈로그, P&G)은 모두 고객이 지불한 돈보다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글의 전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30호(4월 1일자)에 실려 있다.

○ 창의적인 비용 재설계

가격 대비 가치를 올리기 위해 기업은 창의적으로 비용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고객은 적은 비용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 필자들은 신흥개발국 기업이 이런 점에서 선진 기업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지적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첨단기술을 대중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진 기업은 첨단기술 제품을 고가(高價) 시장에 먼저 내놓은 후, 대중 시장에 눈을 돌린다. 하지만 신흥개발국 기업은 비용 구조를 혁신해 처음부터 낮은 가격에 최신 기술을 대중 시장에 선보인다. 이렇게 하면 순식간에 해당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

중국 기업 BYD는 1990년대 중반 비싼 값에 팔리던 리튬이온 배터리의 비용구조를 혁신했다. 이 회사는 값비싼 원자재 대신 저렴한 대체재를 개발했다. 또 별도의 건조실이 없는 보통 작업장에서도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냈다. 이에 따라 40달러나 되던 단위당 생산비는 12달러까지 떨어졌다. BYD는 2007년 기준으로 무선전화기용 배터리 시장의 75%를 차지했다.

비용 혁신의 또 다른 방법은 남들이 놓친 틈새시장을 개발해 대규모 대중 시장으로 키우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기업은 ‘틈새시장이란 자신의 요구를 충족하는 제품·서비스에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소수 소비자로 이뤄져 있다’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신흥개발국 기업들은 틈새시장에서 선진기업들이 놓친 잠재수요를 찾아냈다. 실제로 많은 소비자는 제품 가격이 지나치게 높거나, 가격에 비해 제품의 가치가 낮다고 생각해 ‘틈새 제품’의 구매를 미루고 있다.

중국 최대 DVD 플레이어 제조회사인 신커(新科)는 2002년 소니, 파나소닉, 삼성 등과의 정면대결을 피하고, 숨겨진 시장 기회를 개발하기 위해 휴대용 DVD 시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기존 제품에 비해 30∼50% 저렴한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 이후 5년 동안 시장 규모는 무려 10배로 커졌고, 신커는 30%의 점유율로 업계 선두를 달리게 됐다.

○ 무조건적 고가 시장 진출 지양해야

선진국 기업은 자국 시장에서 신흥개발국 기업에 대응하기 위해 고가 시장에 집중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대부분 효용성이 떨어진다. 고가 시장은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 시장을 잃으면 해당 기업의 시장 입지는 위험할 정도로 줄어든다.

따라서 선진국 기업은 무조건적인 고가 시장 진출을 지양해야 한다. 그 대신 적절한 가격과 그것을 능가하는 가치의 제공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다음과 같은 접근법이 있다.

첫째, 신흥개발국의 자원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선진국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도, 중국과 같은 신흥개발국에서 직간접으로 자원을 확보해 왔다. 하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연구개발(R&D)에서 고객서비스(AS)에 이르는 가치사슬 중 더 많은 단계를 신흥개발국으로 옮겨 효율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컴퓨터 주변기기 제조사인 로지텍은 글로벌 생산센터(1994년)에 이어 제품 설계센터(2005년)를 중국 쑤저우(蘇州)로 이전해 비용구조를 효율화했다. 인텔은 상하이(上海) 등으로 이전한 사업부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뛰어난 기술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둘째는 신흥개발국에서 개발한 제품을 자국 시장에 선보이는 방법이다. 일부 선구적인 다국적 기업은 자국 중심주의를 버리고 신흥개발국의 개발능력을 재조명하고 있다.

유니레버는 오랫동안 인도를 혁신의 원천으로 여기고, 인도에서 생산한 제품을 세계 시장으로 수출하고 있다. 250명이 넘는 연구진이 벵갈루루와 뭄바이의 연구개발(R&D) 센터에서 근무하며 특허 600여 개를 확보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이들 R&D 센터에서는 최근 엄격한 미국 환경보호국 기준을 충족시키는 저렴한 정수 시스템인 ‘퓨어잇’을 개발해 냈다.

마지막은 자사와 신흥개발국 대기업의 역량을 결합하는 방법이다. 정보통신 네트워크 전문업체인 스리콤은 2003년 중국 화웨이와의 협력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스리콤은 자사의 브랜드와 세계적인 유통망, 미국과 유럽 고객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내놓았다. 화웨이는 자사의 제품 라인과 비용 경쟁력이 뛰어난 서비스, 설계, 엔지니어링 역량을 제공했다. 그 결과 스리콤은 강력한 경쟁자인 시스코에 성공적으로 맞서게 됐다. 화웨이는 자사의 기술을 단기간에 세계 시장에 선보이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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