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충격 피하고 몸값 높이자…세계 금융계 美MBA 열풍

  • 입력 2009년 1월 24일 03시 00분


“요즘 같은 때는 무조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 실력을 쌓아둬야 경기가 회복될 때 좋은 기회를 얻을 것 같아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국내 모 증권사 기업금융팀에 근무하는 이모(34) 씨는 지난해 말 미국 명문 경영전문대학원(MBA)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서울 강남에 있는 MBA 전문학원에 등록했다. 회사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시험 성적이 제대로 나오고, 입학허가만 받으면 곧바로 사표를 낼 계획이다.

미국발(發) 금융위기의 충격을 먼저 받아 이미 인력감축이 상당 부분 진행된 금융업계의 20, 30대 직원들 가운데 해외유학을 떠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이 향후 몇 년간 극심한 구조조정기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자 경제위기를 피하면서 몸값도 올리는 방법으로 유학을 선택하는 것.

‘김진홍 MBA 유학컨설팅’의 김진홍 원장은 “외국계 금융회사, 증권사, 대기업 등 좋은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가운데 MBA 과정을 준비하는 사람이 최근 빠르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인도, 중국 등에서 오는 MBA 응시자가 늘고 있어 미국의 명문 MBA 과정에 합격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영대학원들은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불황으로 직장을 잃은 미국 금융권 종사자들이 경영대학원으로 몰린 데다 한국 인도 중국 등지에서도 금융계 경력을 갖춘 인재들이 MBA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영대학원 입학시험(GMAT)을 주관하는 미국 경영대학원입학위원회(GMAC) 측은 2008년 연간 GMAT 응시자가 24만9000명이 될 것으로 지난해 8월에 예상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후 응시자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연간 응시자는 26만4641명으로 전년 대비 11.7% 늘었다. 특히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응시자는 2007년 8만7141명에서 2008년 10만5914명으로 21.5% 급증했다.

미국에서 컬럼비아대 MBA 과정을 밟고 있는 조모(33) 씨는 “컬럼비아대의 새해 응시자가 예년보다 2배 정도로 늘었다고 한다”면서 “뉴욕 월가의 메릴린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MBA로 몰리는 바람에 실무를 잘 알지 못하는 교수들은 수업시간에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이창혁(25·KAIST 수리과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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