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위기↔실물침체 악순환… ‘한미스와프 약효’ 벌써 바닥

  • 입력 2008년 11월 21일 02시 57분


환율 10년 8개월 만에 최고치 2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년 8개월 만에 최고치인 1497.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1500원을 넘나들던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 밑에서 거래를 마치자 시중 은행의 한 외환딜러가 어디론가 급히 전화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환율 10년 8개월 만에 최고치 2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년 8개월 만에 최고치인 1497.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1500원을 넘나들던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 밑에서 거래를 마치자 시중 은행의 한 외환딜러가 어디론가 급히 전화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 주가 폭락-환율 급등… 금융시장 다시 요동

외국인 증시 순매도-달러인출 양상 되풀이

‘돈 구하기 전쟁’ 연말 결산시즌이 중대고비

《금융시장이 국내외 악재에 겹겹이 포위돼 또다시 출렁이고 있다. 신용위기가 실물로 전이되고 이것이 다시 금융시장에 영향을 주는 악순환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주가와 환율 상황은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지난달 30일) 이전의 혼미한 국면으로 되돌아갔다. 정부 당국의 대책이 시장을 일시적으로 진정시킬 수는 있어도 흐름을 돌리기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이번 위기가 ‘길고 깊다’는 방증이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위기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이 싫어하는 온갖 불확실성이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 금융시장엔 악재만 산적

충격의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실물경기 침체 우려가 세계 증시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다시 한국 시장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킨다. 또 글로벌 경제위기가 한국의 수출에 타격을 주면서 기업들의 실적 악화 및 도산 우려가 가중된다.

지금은 국내외 어디를 둘러봐도 딱히 이렇다 할 호재가 보이지 않는다. 투자자들의 마음속엔 ‘기대’는 사라지고 ‘걱정’만 가득한 상황이다.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선 자동차 회사의 도산 공포가 이어지는 가운데 고용 물가 주택경기 등 실물 부문에서 연일 나쁜 소식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석 달 연속 하락하며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고 신규 주택건설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저조한 실적을 냈다. 유럽과 일본 경제도 ‘마이너스 성장’에 접어들었으며, 유수의 글로벌 금융회사 한두 곳이 추가로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외부 상황에 다급해진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20일까지 8거래일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가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이들이 주식을 판 돈을 달러로 환전해 나가면서 원-달러 환율도 급등하고 있다.

국내 사정도 좋지 않다. 건설사와 중소 조선업체의 부실화는 이미 주가에 반영됐고, 이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으면서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유동성 공급과 금리 인하 등 정부의 정책은 시장에서 약발을 잃은 지 오래다. 건전성 악화로 신음하는 은행들도 큰 골칫거리다.

금융위원회의 고위 당국자는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자산 회수와 충당금 쌓기에 열을 올리는 등 제 앞가림하기에 바빠 국내 은행들의 외화 차입 등이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 연말이 ‘중대 고비’

전문가들은 “이번 연말연시에 더 큰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선 각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한 해 장부를 정리하는 결산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출을 회수해야 하고, 기업들도 차입금을 갚으려고 자금을 구하러 다닌다. 자연스럽게 시장에서는 돈이 더 궁해진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연구위원은 “연말 결산이 다가오면서 외국인투자가들의 매도세가 지속되면 증시 및 외환시장의 불안도 커질 수 있다”며 “또 결산이 끝나고 내년 초에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의 좋지 않은 실적이 발표되면 이것도 충격 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증시에서는 외국인의 매물을 받아줄 주체가 없어 수급이 붕괴된 상태고, 내년 무역수지도 적자가 예상되면서 환율 상승세도 상당기간 갈 수 있다. 또 한계상황에 다다른 기업들의 도산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하나대투증권 양경식 투자전략실장은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망하는 회사가 속출할 수 있다”며 “어느 회사가 시장에서 퇴출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높아지는 시점이라서 금융시장도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 기자

외환채권 신용위험도 다시 악화

한국 정부나 은행이 발행하는 외화채권의 신용위험도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20일 국제금융센터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4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가산금리는 18일 현재 5.38%포인트로 전날보다 0.06%포인트 올랐다.

이 금리는 지난달 27일 7.91%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급락해 6거래일 만인 이달 4일 4.74%포인트로 주저앉았으나 이후 다시 오름세로 돌아선 것.

이런 오름세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던 9월 15일의 2.18%포인트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부도 위험성을 반영하는 외화채권에 대한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더 큰 변동폭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7일 6.99%포인트로 정점에 오른 뒤 하락세로 돌아서 이달 5일 2.76%포인트까지 내렸다가 다시 올라 18일 4.01%포인트를 기록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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