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확보 - 경영적자구조 개선 등 과제 산적
유재천 이사장, 정연주 전 사장 지지자에 욕설 등 봉변도
KBS 이사회는 25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임시이사회를 열어 이병순 KBS 비즈니스 사장을 정연주 전 사장의 후임으로 내정했다. 이 사장 내정자가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으면 KBS가 공사로 전환된 뒤 35년 만에 첫 KBS 출신 사장이 탄생한다.
이사회는 4명의 후보자를 면접한 뒤 만장일치 추대를 위해 1시간 동안 논쟁을 벌였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고 4번의 투표 끝에 이 사장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회는 이날 오전 10시경 시작됐으나 11명의 이사 중 이기욱 이사 등 옛 열린우리당의 추천을 받은 4명의 이사는 “사장 후보 공모와 5명으로 압축한 절차에 하자가 있다”며 재공모를 주장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퇴장했다.
하지만 김 전 이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와 인수위에서 활동했던 경력 때문에 ‘낙하산’ 시비에 휘말렸다. 11일 정 전 사장이 해임된 뒤 이 논란은 정치권으로 확산됐고, 김 전 이사는 19일 시장 응모 포기를 선언했다.
이후 김은구 KBS 사우회장, 이 내정자 등이 급부상하기 시작했고 김 사우회장이 정치색이 없다는 이유로 유력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김 사우회장이 17일 정정길 대통령실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유재천 KBS 이사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등과 회동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도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다.
이 내정자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력 후보로 떠올랐으며 이 내정자가 KBS 비즈니스를 맡아 구조조정을 수행했다는 점도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 공정성 회복하고 내부 추슬러야=이 내정자는 정 전 사장의 거취를 둘러싸고 사분오열된 KBS 내부를 서둘러 추슬러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KBS 노조는 이 내정자에 대해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 전 사장을 지지하는 사원들의 모임인 ‘사원행동’은 성명을 내고 “이번 임명 제청은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 내정자는 KBS의 공영성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앞두고 있다. 이 내정자도 이사회 면접에서 ‘공정성 확보’ ‘경영기반 확충’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정 전 사장 시절 ‘탄핵방송’ ‘미디어 포커스’ 등으로 인한 공정성 논란과 신뢰의 추락을 하루빨리 회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 전 사장 시절 만성화된 적자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영 혁신도 이 내정자의 과제 중 하나다. KBS는 상반기에 이미 207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이 추세대로라면 수백억 원의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KBS 안팎에선 이 내정자가 취임하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유재천 이사장, ‘정 전 사장 지지’ 직원들에게 봉변=유 이사장은 이날 오후 이사회가 끝나고 KBS 본관 지하 1층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정 전 사장을 지지하는 일부 직원이 둘러싸고 양복과 넥타이 등을 잡고 밀치는 바람에 두 차례 넘어지고 옷이 찢기는 봉변을 당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KBS 관계자는 “20여 명이 둘러싸고 ‘인간쓰레기’ 등 욕설을 퍼붓고 밀치면서 20여 분간 험악한 상황이 이어졌다”며 “유 이사장은 사내 의무실로 피신했다가 1시간 뒤 회사를 나갔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이병순 내정자는
기자출신 ‘32년 KBS맨’
자회사 2곳 사장 지내
이병순 사장 내정자는 경북고와 서울대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그는 1977년 KBS 보도국 기자로 입사한 뒤 파리·베를린 특파원, 경제부장, 창원·대구총국장, 뉴미디어본부장, KBS미디어 사장을 거쳤다.
작은 것도 꼼꼼히 챙기는 업무 스타일로 깐깐한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2005년 말 KBS 비즈니스 사장을 맡으면서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을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했다는 평을 듣는다. 이 내정자는 정연주 전 사장 시절 이례적으로 KBS 미디어와 비즈니스 등 자회사 2곳의 사장을 잇달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