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는 ‘양치기 소년’?

  • 입력 2008년 7월 11일 03시 13분


1700 → 1600 → 1500… 하반기 코스피 빗나간 저점전망

하반기(7∼12월)에 증시가 떨어져도 코스피지수 1,600 선은 지킬 것으로 내다봤던 증권사들이 최근 증시 침체가 계속되자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고 있다.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5, 6월에 예상했던 하반기 코스피 최저점은 1,600∼1,850 선. 당시 증시 전문가들은 “하반기부터 증시가 본격적으로 반등하기 시작해 2,000 선도 쉽게 뚫을 것”이라며 하반기 최고점을 1,840∼2,300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코스피지수는 이달 4일 1,600 선 밑으로 떨어진 뒤 연일 하락세를 이어가다 10일 소폭 반등해 1,537.43으로 마감했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전망한 증권사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전망이 빗나가자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투자자 보기가 부끄럽다”는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증시 전망 잇따라 낮춰

10일 국내 주요 증권사 10곳의 하반기 전망을 조사한 결과 8곳이 5, 6월에 발표했던 기존의 전망을 최근 들어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하반기 증시가 1,715∼1,840 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던 삼성증권은 최근 1,460∼1,715로 전망치를 낮췄다. ‘최저점’으로 봤던 1,715가 ‘최고점’으로 바뀐 것이다. 당초 하반기 최저점을 1,600으로 내다봤던 동양종금증권도 이 수치를 최근 1,470으로 크게 낮췄다.

하반기 전망이 어긋난 이유에 대해 증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유가 등 대외 변수의 변동성이 지나치게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투자증권 박종현 리서치센터장은 “증시 전망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은 기업의 이익”이라며 “국내 기업의 실적이 좋은 편이라 증시를 긍정적으로 내다봤지만 유가 급등과 환율 변동 등 대외 변수의 영향으로 증시가 하락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오현석 투자전략파트장도 “하반기 전망을 내놓았을 때 세계 경제가 악화될 것은 예상하긴 했지만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고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24일째 순매도를 이어가는 상황은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 “투자자 보기 부끄럽다”

증시가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는 수준으로 움직이자 증시 전문가들은 ‘패닉(공황)’ 상태에 빠진 모습이다.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A 씨는 “요즘 증시 전망을 내놓은 후 하루 이틀 뒤면 전망이 완전히 틀린 것으로 확인돼 매번 거짓말을 한 것처럼 돼 버렸다”며 “투자자를 만나는 데 자신감이 없어졌고 증시 전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털어 놓았다.

한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을 맡고 있는 B 씨는 “리서치센터의 주요 임무는 투자자에게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요즘에는 기관투자가들이 리서치센터가 내놓는 정보에 강한 불신감을 보여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증권업계 종사자들은 증시가 장기 하락세를 보일 때마다 반복되던 문제가 이번에도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 매입 자금이 많이 들어와야 이익을 보는 증권사에 소속된 애널리스트들이 부정적인 증시 전망을 꺼리다 보니 지금 같은 장세를 설사 예상했더라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증권사에서 투자은행(IB) 업무를 담당하는 C 씨는 “리서치센터별로 다양한 의견이 나와야 실력의 차이가 나타날 텐데 국내에서는 모든 리서치센터가 비슷한 목소리만 내는 상황”이라며 “지금 같은 장세에서는 부정적인 정보라도 투자자들에게 제때, 올바르게 전달해주는 증권사나 애널리스트의 부재가 아쉽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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