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명품수제화 ‘테스토니’ CEO 브루노 판테키

  • 입력 2008년 4월 26일 02시 58분


최고급 수제화 제작업체인 테스토니의 브루노 판테키 최고경영자(CEO)는 대중에게 브랜드를 알리기보다 장인정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극소수 고객만 공략하는 ‘은둔 마케팅’을 지속하겠다고 설명했다. 볼로냐=하정민 기자
최고급 수제화 제작업체인 테스토니의 브루노 판테키 최고경영자(CEO)는 대중에게 브랜드를 알리기보다 장인정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극소수 고객만 공략하는 ‘은둔 마케팅’을 지속하겠다고 설명했다. 볼로냐=하정민 기자
테스토니는 200여 개가 넘는 구두 제작 전 공정을 수작업으로 처리하는 볼로냐 지방의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 제공 테스토니
테스토니는 200여 개가 넘는 구두 제작 전 공정을 수작업으로 처리하는 볼로냐 지방의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 제공 테스토니
“테스토니의 고객은 극소수 최고급 인사

누구나 가질수 있는 제품은 우리의 지향점이 아니다”

《철저한 가족 경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명품 업체들이 획기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글로벌 명품 시장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많은 명품 업체가 자본 확충을 위한 기업공개(IPO)를 시도하거나 사모펀드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고 있다. 기회의 땅으로 부상한 아시아 시장, 특히 중국을 선점하려면 광고, 마케팅, 판매망에 막대한 돈이 필요한 데다 제품군을 늘리기 위해서도 거대 자본과 손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자존심 발렌티노는 영국 사모펀드 퍼미라에 팔렸다. 역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살바토레 페라가모, 로베르토 카발리, 베르사체 등도 잇달아 증시 상장을 검토하고 나섰다. 프라다 역시 매각 혹은 IPO설이 끊이지 않는다. 이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다른 명품 업체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는 한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한 켤레에 100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수제화로 유명한 테스토니가 그 주인공이다.

80년의 테스토니 역사상 최초로 외부인 출신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브루노 판테키(45) 대표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로선 어떤 종류의 자본 확충 계획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테스토니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이뤄진 이 인터뷰는 판테키 대표가 지난해 CEO로 취임한 후 해외 언론과 가진 첫 인터뷰다.》

○ “도요타 아닌 페라리 되겠다”

판테키 대표는 스위스 연방공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WC)에서 근무한 후 게스, 말로, 구치 등에서 최고 재무책임자(CFO)를 지내며 패션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4년 전 테스토니로 자리를 옮겼고 작년 4월 테스토니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인 출신 CEO에 올랐다. 이력에서 보듯 판테키 대표는 전형적인 재무통이다. 그런 그가 ‘규모의 경제’ 대신 전통적인 이탈리아식 소규모 경영 노선을 고수하는 것이 매우 이례적으로 느껴졌다. 그 이유부터 물었다.

“테스토니는 극소수의 최고급 고객을 대상으로 한 명품(prestige product)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일반 대중제품(mass product)이나 대중적인 중고가 명품 매스티지(masstige)와는 걷는 길이 다릅니다. 폴로를 보세요. 10년 전에는 누구나 폴로를 입고 싶어 했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나 폴로를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제품은 테스토니가 지향하는 바가 아닙니다.”

소수만 아는 명품이라는 테스토니의 정체성에 관해 판테키 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테스토니가 패션업체라고 해서 테스토니가 본받아야 할 대상을 패션업계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겠죠. 차로 말하면 도요타가 아니라 페라리, 시계로 말하면 롤렉스보다는 IWC가 되고 싶습니다. 무작정 제품군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거대 럭셔리 그룹과 싸워서 이길 수 없어요. 우리가 강점을 가진 남성용 제품에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장인정신을 파는 철저한 ‘은둔 마케팅’

테스토니의 이 같은 신념은 제품 및 광고 전략에서도 잘 드러난다. 테스토니는 다른 명품 업체와 달리 할리우드 스타들을 이용한 광고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신발, 가방, 지갑 등에서 테스토니를 상징하는 로고나 브랜드 이미지를 찾아보기도 힘들다. 한마디로 ‘선수들만 아는 명품’이요, 전형적인 은둔형 마케팅 전략을 쓰는 셈이다.

그런데도 한 번 써 본 사람들은 계속 테스토니 제품을 찾는다.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 석유 재벌 록펠러 등이 테스토니의 마니아들이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전두환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이 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방북 당시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 신었던 구두 역시 바로 테스토니다.

판테키 대표는 은둔형 마케팅 전략을 쓰는 이유와 관련해 품질에 자신이 있으면 드러내놓는 요란한 마케팅에 목맬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마케팅 전략은 바로 장인정신이다”라며 “이를 통해 예술로서의 명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투증권 유정현 애널리스트는 “명품 시장의 규모와 수요층이 늘어나면서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널드와 럭셔리를 조합한 ‘맥럭셔리’란 용어까지 생겨났다”며 “대중화된 럭셔리 상품의 트렌드 속에서 차별화를 꾀하려는 것이 테스토니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말했다.

테스토니의 이 같은 브랜드 캐릭터는 구두뿐 아니라 가방을 비롯한 기타 가죽제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핸드백, 여행가방, 지갑, 벨트 등도 숙련된 장인들이 엄선한 가죽으로 직접 수공 작업을 통해 생산해 내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 유럽 전체(러시아 포함), 중국에 이어 테스토니 그룹 전체 매출의 15% 정도를 담당하는 3위 시장이다. CEO 취임 직후인 지난해 말 한국을 방문하기도 한 판테키 대표는 패션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과거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남성들의 컬러는 모두 검은색 일색이었습니다. 하지만 갈색 비중이 상당히 증가했더군요. 이는 취향 변화의 중요한 신호입니다. 테스토니 역시 이 점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볼로냐=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테스토니는 어떤 회사…

伊볼로냐 제화전통 이은 수제화 名家

테스토니는 12세기부터 가죽 가공으로 유명했던 이탈리아 볼로냐 지방의 제화 장인인 아메데오 테스토니가 1929년 설립한 브랜드다. 테스토니 가문은 볼로냐 구두산업의 전통을 가장 보수적으로 지켜온 가문이다. 대량생산이라는 현대사회의 물결에 맞서 볼로냐 식 수작업을 여태껏 꿋꿋이 지켜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루면 만들 수 있는 일반 구두와 달리 테스토니 구두는 제작에만 최소 60∼70일이 걸린다. 가죽 재단, 바느질, 뒷마무리 등을 모두 20∼30년 경력의 장인들이 손수하기 때문이다.

테스토니 구두는 한 켤레를 생산할 때 무려 200개가 넘는 공정을 거치는 볼로냐 공법(Bolognese Construction)으로 만들어진다. 제품 생산의 모든 공정은 각 파트를 맡은 장인들에 의해 엄격하게 다뤄진다. 이들은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40년 이상 테스토니의 구두를 제작해 온 인간문화재급의 기술자들이다. 기자가 볼로냐 공장을 방문했을 때도 이 같은 장인정신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이 최상급 가죽을 선별해 디자인에 맞는 최고의 가죽 부위를 골라내는 데만도 한 켤레에 4시간 이상 필요하다고 한다. ‘제품 하나하나에 혼을 담는다’는 테스토니만의 장인정신이 실감났다.

볼로냐 공법 중 테스토니만의 대표적 수작업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주머니 공법을 의미하는 사케토(Sacchetto) 공법은 공기 가죽주머니를 밑창에 삽입하는 것이다. 발가락과 그 주위 부분이 구두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소가죽이 아니라 땀을 잘 흡수하는 것으로 유명한 염소가죽을 사용한다. 신발을 마치 하나의 양말처럼 만들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난도가 높은 필레토네(Filettone) 공법은 발 움직임이나 부기에 따라 신발 가죽 및 바느질 연결 부분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줄어 구두의 착용감을 높여준다. 산악 기후에서 오랫동안 걸어도 신발이 떨어지지 않도록 북유럽 지역에서 고대 등산화를 만들 때부터 사용한 기술인 노르웨이(Norwegian) 공법 역시 테스토니만의 비법이다.

과거 수백 개가 넘었던 볼로냐 구두 제조업체 중 현재 테스토니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볼로냐 공법의 맥을 잇고 있다. 이 공법은 착용자에게 가장 편안한 느낌을 주는 독특한 기술로 현대의 그 어떤 기계 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시아인, 미국인, 유럽인의 발 형태를 철저히 분석해 각기 특성에 맞는 구두를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렇다 보니 제품 가격은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테스토니의 대표 라인인 ‘블랙 라벨’의 한 켤레 가격은 70만∼100만 원 선, 최고급 라인인 ‘아메데오 테스토니’ 라벨의 가격은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심지어 한 켤레가 웬만한 차 한 대 값보다 비싼 2만 달러(약 2000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수제화도 있다.

볼로냐=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