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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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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11시경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직접 대(對)국민 사과와 함께 자신의 퇴진을 발표하자 기자회견장은 순식간에 술렁거렸다.
이날 회견은 이 회장이 1995년 4월 중국 베이징(北京)주재 특파원들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발언으로 파장을 낳은 지 13년 만에 언론 앞에 공식적으로 나선 자리였다. 그러나 충격은 13년 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이 회장이 ‘국민께 사과 및 퇴진 성명’을 읽어나가는 동안 삼성전자 이기태 부회장, 최도석 사장, 황창규 사장, 최지성 사장,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 삼성생명 이수창 사장 등 배석한 40여 명의 그룹 사장단은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
담담하던 이 회장의 목소리도 “앞으로 더 아끼고 도와주셔서 삼성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키워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성명 마지막 대목을 읽을 때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운 탓인지 떨렸다.
이어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의 ‘경영쇄신 내용’ 발표가 이어지자 예상을 뛰어넘는 내용에 회견장은 다시 한 번 술렁였다. 한 외신기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주주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이날 회견에는 200여 명의 국내외 취재기자가 몰렸으며, 기자회견은 TV를 통해 국민에게 생중계됐다. 또 삼성그룹 전 계열사의 사내(社內)방송으로도 생중계돼 18만여 명의 국내 근무 직원 중 상당수가 이 회장의 퇴진 발표를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영 쇄신안은 이 회장이 이학수 실장 등 그룹의 핵심 경영자 극소수와 상의한 뒤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10시에 소집된 사장단회의도 계열사 사장들에게 오전 7시 50분경 일제히 통보될 정도로 철저한 보안을 지켰다.
계열사 사장들은 사장단회의에서 ‘이건희 회장 퇴진’ 등 쇄신안에 대한 설명을 처음 들었으며, 상당수 사장은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삼성 직원들도 일손을 놓은 채 이 회장의 성명 발표를 지켜보면서 착잡함과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일부 임직원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삼성 계열사의 한 직원은 “누가 뭐래도 삼성은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국가경제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면서 “오늘날의 삼성을 만든 주역인 이 회장이 이렇게 퇴진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