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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2일 02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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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사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 대한 사회봉사명령은 적절하지 않으니 형량을 다시 정하라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서울고법은 집행유예를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실형 등 형을 더 무겁게 내릴지 다시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1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11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및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9월 정 회장에게 사회봉사명령을 내리면서 84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고 준법경영에 대한 강연과 신문 기고를 하도록 구체적 방법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형법에서 사회봉사는 500시간 내의 일 또는 근로활동을 의미하므로 노역 대신 재산을 내놓으라고 명한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사회봉사 명목의 기고와 강연 역시 문제 삼았다. 이런 방법은 1995년 12월 사회봉사명령에 대한 법률을 만든 후 처음이다.
법조계에서는 “혐의에 대해 ‘죄가 되는지 몰랐다’고 말한 정 회장에게 자신의 생각과 다른 취지의 글을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었다.
대법원도 이번에 “강연과 기고의 취지가 분명치 않고 의미나 내용이 정해지지 않아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정 회장은 회사 돈 693억 원을 횡령하고 비자금 1034억 원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이번 사건은 열흘 정도 뒤에 서울고법으로 돌아간다. 새 재판부가 한두 차례 공판을 연 뒤 선고를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 측이나 검찰이 불복하면 대법원에 다시 상고할 수 있다.
가장 큰 쟁점은 집행유예를 그대로 유지할지다. 원심이 파기되면서 집행유예 판결도 함께 파기됐기 때문이다.
새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유지한 채 ‘노역’ 형태로 사회봉사명령을 바꿀 가능성이 크지만 아예 형을 다시 선고할 수 있다. 이번 판결로 정 회장은 84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현대차그룹은 “경영 현안이 쌓여 있어 어려운데 사건이 종결되지 않아서 곤혹스럽다.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며, 향후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법원은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의 상고심도 파기 환송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농협회장이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며 뇌물공여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농협회장을 사실상 공무원으로 여겨 원심을 파기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