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더 많이 드릴게요”… 은행들 ‘빚의 유혹’

  • 입력 2007년 10월 24일 03시 03분


코멘트
“5000만 원까지 가능합니다. 얼마나 빌려 드릴까요?”

회사원 박모(39) 과장은 최근 마이너스 대출을 받기 위해 거래 은행의 지점을 찾았다가 은행원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2, 3년 전만 해도 마이너스 대출 가능 금액이 1000만∼2000만 원 수준이었는데 최대 한도금액이 5000만 원까지 늘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1000만 원만 대출을 받은 그는 “은행들이 마구잡이로 신용대출을 늘리는 것은 봉급생활자들이 ‘빚더미’에 올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발상 아니냐”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직장인 대상의 대출에 적극 나서면서 개인 신용대출 규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 주식투자 목적으로 돈을 빌린 사람도 상당수여서 주가가 급락하거나 경기가 침체에 빠질 경우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된다.



○ 年소득 200%까지 무담보 대출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179조 원에서 6월 말 현재 191조 원으로 6개월 만에 12조 원 증가했다.

은행들은 신용대출을 늘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신상품을 내놓거나 가두 홍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으로 직장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전에는 은행과의 거래실적에 따라 대출액에 차이를 뒀으나 최근에는 직장이나 연소득 수준에 맞춰 대출액을 정해 대출한도가 크게 늘었다.

우리은행은 6일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회사 직원을 대상으로 한 ‘금융인클럽 신용대출’ 상품을 내놓았다. 연소득의 200%까지 대출이 가능해 연봉이 5000만 원이면 1억 원까지 무담보로 빌릴 수 있다.

하나은행도 4000개의 우량 기업체를 별도로 선정해 대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23일 내놓은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8월 시중은행과 2금융권의 가계대출은 4조9580억 원 증가해 월간 기준으로 올해 최고치를 나타냈다. 특히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 3조3597억 원 가운데 신용대출은 2조8937억 원으로 86%를 차지했다.

○ 은행에서 돈 빌려 주식에 투자하기도

은행들은 주 수익원이던 주택담보대출이 금융당국의 억제 조치로 정체 기미를 보이자 신용대출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주요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국민 0.80%, 신한 0.48%, 우리 0.66%, 하나 0.51% 등 모두 0%대 수준이다. 은행들은 개인 리스크(위험) 관리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신용대출을 늘리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고객들의 잠재 부실을 담보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은행의 가계대출 담당자는 “올해 증시가 호황을 누리면서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려고 신용대출을 받는 고객이 많다”며 “담보나 보증 없이 1억2000만 원을 빌려 주식에 투자한 사례를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경제가 발전하고 씀씀이가 커지면서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개인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