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2신도시 예정지 토지 수용, 정부의 이상한 논리

  • 입력 2007년 6월 18일 02시 59분


정부가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를 지정하면서 개별 토지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거치지 않아 어렵사리 외자를 유치해 마련한 사업장들이 대거 수용될 처지에 놓였다. 신도시로 지정된 화성시 동탄면 청계리 일대.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정부가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를 지정하면서 개별 토지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거치지 않아 어렵사리 외자를 유치해 마련한 사업장들이 대거 수용될 처지에 놓였다. 신도시로 지정된 화성시 동탄면 청계리 일대. 동아일보 자료 사진
《CJ그룹이 30만 평 규모의 대형 물류기지를 짓기 위해 매입한 땅이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에 편입돼 사업규모가 크게 줄어들거나 장기 표류할 처지에 놓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업은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협조로 외국계 자본을 유치해 용지를 사들인 것이어서 국가신인도 하락까지 우려되고 있다. 정부는 신도시 지정 과정에서 주변의 골프장은 빼놓은 채 외자(外資)까지 유치한 물류시설이나 제조업 공장을 수용 대상에 포함시켜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외자유치 사업용지 “넣고”

주변 골프장 시설은 “빼고”

○ 외자 유치했더니 신도시로 땅 수용

17일 CJ그룹과 건설교통부, 경기도 등에 따르면 정부가 이달 초 동탄2신도시 예정지로 발표한 동탄면 일대에 CJ그룹이 물류기지를 만들기 위해 사들인 토지 22만 평 중 7만3000평이 포함됐다.

이 용지는 CJ그룹의 물류 계열사인 CJGLS와 건설사인 CJ개발이 작년 12월 매입한 땅으로 물류기지로 조성할 30만 평 가운데 1차분이다.

CJ그룹은 땅을 사들이기 위해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590억 원 규모의 펀드 ‘마르스PFV’를 참여시켰다. CJ그룹은 현재 이 펀드에 19.9%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나머지는 미국 하버드대 등 대학과 연기금 등이 출자했다.

이 사업은 경기도가 외자유치의 일환으로 이 일대 토지를 물류시설로 지정해 주는 조건을 내건 상태였으며 경기도와 CJ그룹은 이 같은 계획을 사전에 마르스PFV 등에 설명해 투자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또 대형 할인점인 홈플러스를 운영하는 삼성테스코도 물류기지에 참여키로 합의했으며 미국 물류회사인 프로로직스와도 지분 참여 등을 협의 중이었다.

하지만 건교부가 해당 용지 가운데 33%를 수용 대상 토지로 선정해 사업 자체가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건교부와 함께 신도시를 지정한 한국토지공사 측은 “CJ그룹의 토지는 산꼭대기에 있어 물류기지로 적합하지 않다”고 해명했지만 CJ그룹 측은 “직접 가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해 현장 실사(實査) 과정을 제대로 거쳤는지도 의문시된다.

이 밖에 올해 3월 인근 동탄면 방교리에 150억 원을 들여 본사를 마련한 볼보트럭코리아도 사옥 전체가 신도시로 지정돼 난감해하고 있다.

볼보트럭코리아 이성종 이사는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지은 지 3개월밖에 안 된 사옥을 내 달라고 하느냐”며 “한치 앞도 못 보는 정부 행정이 국가적 망신을 초래했다”고 성토했다.

○ 건교부 “대체 용지로 가라”

이에 대해 정부는 신도시 지정의 특성상 개별 토지의 특성을 일일이 반영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극도의 보안 속에 진행돼야 하는 만큼 미리 공개할 수 없었다는 반응이다.

건교부 당국자는 “수용 대상 공장에 대해서는 설문조사를 통해 신도시 산업단지(자족시설 용지)에 유치하거나 인근의 빈 땅으로 사업장을 옮기도록 유도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물류기지처럼 위치 자체가 중요한 사업장은 이 같은 대안 자체가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다 주변 토지를 매입한다고 해도 신도시 지정 이후 땅값이 올라 여의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경기도 개발사업팀 관계자는 “건교부가 사전에 충분한 현지 조사를 한 뒤 신도시를 지정했어야 했다”며 “지금으로선 기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또 “우선 건교부가 신도시 예정지를 지번별로 공람하면 외자 유치 기업들의 토지는 빼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손실보상을 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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