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대 제각각… 작년 국가채무 3조9000억 차이

  • 입력 2007년 3월 7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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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우리 숫자가 맞다니까요.” 재정경제부 A 과장은 6일 기자가 정부 부처별로 국가채무 등 주요 경제지표 수치가 다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다른 부처에서는 최근 결산 상황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통계를 미처 업그레이드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당분간 이런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같은 경제지표를 놓고 정부 부처별로 다른 통계를 내놓는 ‘후진국형 상황’은 그렇지 않아도 국민의 불신이 적지 않은 정책의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가 지적한다.》

정부도 부처 및 기관별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통계의 생산 및 집계를 단일화하기 위해 이르면 7월부터 ‘국가통계 포털사이트’를 구축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난맥상을 먼저 해소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 기본 통계도 서로 달라

정부 부처 간 다른 통계 중에서는 해외 기관에서 한국 경제를 한눈에 파악하는 데 활용하는 지표도 적지 않다.

2005년 기획예산처와 e-나라지표가 4조3000억 원의 차를 보인 통합재정수지는 정부의 재정활동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일반회계, 특별회계에 기금을 더한 것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로 집계를 시작한 지표다.

현 정부 들어 실질적 증가 여부를 놓고 학계 내부의 논쟁까지 유발한 국가채무가 조사기관별로 큰 차이를 보인 데 대해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나왔다.

인천대 옥동석(무역학) 교수는 “정부가 국가채무를 산정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통용되는 기준보다 느슨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외국 학자들도 많은데 정부 내부의 통계조차 서로 다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고 말했다.

일부 연도에서는 경제성장률 등 가장 기본적인 통계도 미세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2004년의 경우 재경부와 통계청 등은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 증가율)을 4.7%로 집계했는데 e-나라지표는 이보다 0.1%포인트 낮은 4.6%라고 밝혔다.

○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 같은 현상은 통계 생산 부처 및 기관 사이에 유기적인 자료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는 데다 통계에 대한 기준과 분석 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통계청은 각종 세금 관련 통계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행정자치부나 국세청에서 모두 공급받지는 못하고 있다.

성신여대 강석훈(경제학) 교수는 “각 부처가 통계 작성에 필요한 원자료의 소유권을 주장하다 보니 통계청이 토지보유 현황 등 개인의 자산을 파악하기 위한 자료도 제대로 못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종 용어 등이 국제 기준에 맞지 않아 국가 간 통계 비교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상의 세금으로 분류되는 준(準)조세는 OECD 가입국 가운데에서는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는데 선진국에서는 준조세 중 일부 항목을 공식적인 조세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낮게 나온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가채무라는 개념도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OECD 가입국들은 주로 ‘일반 정부 총금융부채’를 쓰고 있다. 우리의 국가채무보다 더 범위가 넓은 개념이다.

옥동석 교수는 “방만한 경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공기업에 대해서도 행정자치부와 예산처의 분류 기준이 다르다”며 “통계 작성용 정확한 개념 확립에 범정부 차원의 지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외국은 어떻게 하고 있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 부처에서는 종종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통계를 놓고 책임 떠넘기기를 하곤 한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한 공무원은 “통계청에서 사(私)교육 시장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파악하지 못해 공교육 활성화 대책에 필요한 기본 자료를 얻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재경부의 관계자는 “저(低)출산 대책 마련을 위해 임신과 출산에 들어간 비용을 찾으려는데 제대로 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피부관리업도 무자격자들이 운영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정작 피부관리업 실태 및 현황 등을 보여 주는 통계는 없는 실정이다.

통계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는 정부 차원의 권위 있는 통계 작성을 위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사업체 기초통계와 관련해 프랑스는 450명의 직원이 600만 개를 분류하고 있다. 캐나다도 200명이 180만 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통계청에서는 10명 남짓한 인력이 340만여 개를 분류해 분석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석훈 교수는 “가계 조사 기초 자료를 찾는데 국내 자료보다 인터넷으로 미국 자료를 찾는 게 더 빠를 때가 많다”고 말했다.

미국의 센서스국이나 노동통계국에서는 통계 원자료(raw data)를 공개하지만 한국은 기관마다 통계가 다를 뿐 아니라 기본적인 평균값 정도만 공개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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