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共 ‘금융계 황제’ 이원조씨 별세

  • 입력 2007년 3월 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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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공화국 시절 은행감독원장과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금융계의 황제'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며 정권의 핵심실세로 군림했던 이원조 씨가 2일 뇌출혈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이 씨는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뇌일혈로 쓰러진 뒤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사 상태에 빠져 있다가 결국 의식을 찾지 못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죽마고우로 경북고 32회 동기동창인 고인은 1955년 경북대 사범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제일은행에 입사했다. 일 욕심이 많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성격 덕분에 1974년 서울 용산구 이촌동지점장 시절을 시작으로 예금 유치 전국 1위 지점장을 여러 차례 기록했다. 이 시절 군부 내 '하나회'를 이끌던 전, 노 두 대통령의 자금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TK(대구 경북) 사단의 금고지기' 인생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1979년 12·12쿠데타 당시 제일은행 상무였던 그는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자문위원에 참여했다가 5공화국이 출범하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1급 경제비서관으로 발탁됐다.

그로부터 한 달 만에 석유개발공사 사장이 됐고, 1986년에는 은행감독원장에 올랐다. 당시에는 재무부장관조차 그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5, 6공 13년 간 '이원조의 재가 없이는 시중 은행장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경제 권력은 막강했다.

6공 때 청와대의 한 인사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이원조에 대한 평판이 안 좋으니 멀리 하시라"는 진언했다가 "그는 내 친구"라는 대통령의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인 '불사조'는 1989년 5공 비리 사건, 1993년의 동화은행 비리 사건과 노태우 비자금 사건 등으로 여러 번 검찰의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리 되면서 생긴 것이다. 동화은행 사건 때는 검찰 수사망을 피해 일본으로 출국해 1년 5개월 간 도피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4월 노 전 대통령의 뇌물 60억 원을 조성한 혐의로 2년6월의 징역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결국 구속됐다. 당시 그는 "감옥 가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면서도 "운명에 맡기고 죄과를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그의 지인들은 "개인적으로 만나 보면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검사 시절 그의 비리 혐의를 오랫동안 추적했던 함승희 전 의원은 한 언론인터뷰에서 "기본적으로 간사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제 하늘이 그에 대한 엇갈린 평가들을 정리해 줄 것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순례 씨와 2남.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최우열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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