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한국의 경제단체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차기 회장 선임에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3연임이 확실시되던 강신호 회장이 회사(동아제약) 경영권을 둘러싸고 둘째 아들인 강문석 수석무역 대표와 갈등을 빚어 논란이 된 데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사실상 강 회장의 연임에 반대해 전경련 부회장직에서 전격 사퇴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본보 3일자 32면 참조
▶ 전경련 심상찮다…김준기 부회장 총회 1주일 앞두고 사퇴
또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상당수 그룹의 내부 분위기도 강 회장의 연임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 전경련 회장단 회의 전의 분위기
전경련 회장 선임 문제를 실무 조율해 온 조건호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본보에 밝힌 바에 따르면 조 부회장은 회장단회의 전에 재계 원로들과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에 강 회장 연임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들 4개 그룹은 “회장단회의의 대세를 따르겠다”며 구체적인 찬반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
4대 그룹을 제외한 모든 회장단의 의견도 들어 본 결과 강 회장의 연임을 찬성한 사람은 경제부총리 출신인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과 비교적 사세(社勢)가 약한 A그룹 회장 등 두 명 정도였다.
특히 일부 그룹에서는 전경련 측에 “강 회장 부자의 경영권 다툼 문제로 온갖 소문이 돌고 있는데 전경련이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 회장단 회의 당일 표정
결국 의견 조율이 전혀 안된 상태에서 1월 25일 전경련 회장단회의가 열렸다.
조 부회장이 그동안 차기 회장 문제에 대한 경과 상황을 보고했으나 회장단은 회의가 끝나고 만찬을 마칠 때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회의 막바지에 ‘하위 그룹’ 회장 2명이 “대안도 없는데 강 회장의 연임으로 가자”며 분위기를 잡았다.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얘기를 듣고 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그럼, 강 회장이 한 번 더 하시죠”라고 말했다고 조 부회장은 소개했다.
이에 따라 ‘회장단이 만장일치로 강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재추대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하지만 일부 중견그룹 회장은 “그래도 여기 참석하지 않은 회장단의 의견을 들어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간접적으로 강 회장 연임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전경련은 회장단회의 후 “강 회장이 재추대됐으며 이를 고사하는 강 회장이 일주일 동안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고 발표했지만 추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던 셈이었다.
○ 앞으로 어떻게 될까
조 부회장은 2일 오후 동부 김 회장에게 “전경련 부회장직 사퇴 의사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전경련이 변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 부회장은 본보 기자에게 “강 회장에게 김 회장에 대한 보고를 했지만 강 회장은 본인의 거취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 부회장은 “회장단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며 “5일부터 재계 원로들의 의견을 들은 뒤 필요하면 일부 회장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한때 전경련 회장직 연임을 고사한 강 회장이 ‘많은 상처’까지 입으면서 회장 자리를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힐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럴 경우 차기 전경련 회장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당장 9일로 다가온 전경련 총회 결과가 주목된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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