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칸 밀레 회장 “한국 가전, 기술보다 디자인에 너무 치중”

  • 입력 2006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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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 진칸 밀레 회장이 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밀레코리아 매장에서 이 회사 에스프레소 기계로 뽑은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는 “밀레의 경쟁력은 기술력”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밀레코리아
라인하르트 진칸 밀레 회장이 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밀레코리아 매장에서 이 회사 에스프레소 기계로 뽑은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는 “밀레의 경쟁력은 기술력”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밀레코리아
192cm나 되는 큰 키의 독일인이 다가와 영국 악센트의 영어로 말을 건넸다.

“Nice to meet you(만나서 반갑습니다).”

1899년 독일에서 설립돼 1901년 세계 최초로 세탁기를 만든 주방 가전업체인 ‘밀레’의 라인하르트 진칸(47) 회장이다.

그는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인 동명(同名)의 증조부 이후 2002년부터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고 미국 하버드대를 거쳐 독일 베를린테크니컬대에서 통상학 박사 학위를 받은 ‘준비된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다.

한국을 방문해 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밀레코리아 매장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기 전 그를 따로 만났다.

밀레는 1990년 ㈜쌍용이 수입 판매하는 형태로 국내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한국 법인을 세웠다. 200만 원이 넘는 이 회사의 세탁기와 식기세척기 등이 ‘입소문’을 타고 불티나게 팔리며 지난해 국내에서 17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 제품은 한결같이 금속과 흰색으로만 디자인된다. 국내에서 지금까지 10만 대가 팔려나간 진공청소기만 노랑 빨강 등 색상 마케팅을 시도했을 뿐이다.

감성 경영시대에 흰색은 진부하지 않을까.

진칸 회장은 “숙녀 분에게 분홍색 꽃무늬 옷만 15년 동안 입으라고 한다면 지겨워하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최근 국내 가전회사들이 주력하는 아트 가전에 대해서는 “요즘 한국 회사들은 기술력보다 디자인에만 지나치게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벽에 걸린 세계지도로 다가가 북아프리카와 중남미 일대를 차례로 짚어 나갔다.

“흥미롭게도 어느 대륙에서건 고급 소비자들은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제품을 찾더군요. 저 역시 넥타이는 에르메스, 승용차는 BMW에 강한 애착이 있습니다. 나처럼 가업을 잇는 이탈리아 페라가모 브랜드의 살바토레 페라가모 씨와는 개인적 친분이 있고요.”

독일의 밀레 가문과 진칸 가문은 이 회사를 공동설립한 뒤 대를 이어가며 생산과 영업을 번갈아 맡는 이색적 사업구도를 갖추고 있다.

현재 영업을 담당하는 진칸 회장은 “초등학생 아들이 축구에만 관심이 있어 가업이 이어질지는 모르겠다”고 웃은 뒤 “앞으로도 품질 경영을 가장 중시하겠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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