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뉴스편집 ‘멋대로’서 ‘제대로’로

  • 입력 2006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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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SK커뮤니케이션즈 본사에서 이 회사의 미디어 책무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왼쪽에서 네 번째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승찬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김미옥  기자
24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SK커뮤니케이션즈 본사에서 이 회사의 미디어 책무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왼쪽에서 네 번째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승찬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김미옥 기자
○ 미디어 책무위 발족… 매달 회의

세 평 남짓한 회의실 한가운데에 있는 스크린에 불이 켜졌다.

포털사이트인 네이트닷컴의 초기 화면이 떴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뚫어져라 화면을 응시했다. 이들은 SK커뮤니케이션즈가 운영하는 네이트닷컴의 미디어 책무위원회 위원들이다. 위원회는 뉴스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포털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6월 발족했다.

양승찬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가 위원장을 맡은 이 위원회는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 외부 인사 7명과 이 회사의 황순구 미디어편집팀장을 비롯해 8명으로 구성됐다.

한 달에 한두 차례 열리는 위원회는 8월에 뉴스 편집가이드를 정했다.

기자는 24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SK커뮤니케이션즈 본사에서 두 시간 동안 열린 6차 회의를 직접 지켜봤다. 이날 회의에서는 포털 뉴스 편집에 대한 ‘자기반성’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 포털이 저작권 침해 부추겨

“언론사가 제공한 기사의 제목을 포털이 무리하게 바꿨다면 지적해 주십시오.”(양 교수)

“한 언론사가 보도한 기사의 ‘수사 기밀 유출 의혹’이란 제목을 포털이 ‘수사 기밀 유출’로 임의적으로 줄인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민경배 ‘함께하는 시민행동’ 정보인권위원장)

“화면에 맞춰 글자 수를 줄이다 보니….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황 팀장)

신문사 편집회의를 떠올리게 하는 회의에서 “개그우먼 김신영이 네 살 연하의 남자친구와 결별한 것을 굳이 실을 필요가 있었는가” “포털이 저작권 침해를 부추긴다” 등의 의견도 나왔다.

법무법인 율촌의 염용표 변호사는 최근의 국내 판결을 소개하기도 했다. 어느 언론사의 오보를 그대로 게재한 포털 네이버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은 1심 결과였다.

염 변호사는 “강력하게 포털의 책임을 물은 이 판결은 사실상 언론 역할을 하면서도 책임에는 소홀했던 포털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국내 포털은 준비가 안 된 채 거대권력을 갖게 됐다”며 “흥미 위주의 편집과 오보(誤報) 유통 등을 막는 막중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터넷 언론 폐해 이대로는 안된다

포털을 ‘뉴스 유통자’로 부르는 위원들은 최근 무분별하게 생겨나는 인터넷 언론매체의 폐해도 우려했다.

현재 이 회사가 뉴스를 공급받는 매체는 60여 곳.

그러나 일부 인터넷 매체는 다른 언론사 기사를 베끼거나 신뢰성이 떨어지는 기사를 생산한다고 한다. 이 기사들은 다수가 보는 포털에 그대로 실려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황 팀장은 “포털의 영향력은 지금이 절정이라고 본다”며 “앞으로 무선인터넷 등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포털은 또 다른 신생 뉴스 유통자와 경쟁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의 미디어 책무위원회를 시작으로 국내 포털의 자율 규제는 활기를 띠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이달 초 ‘열린 사용자 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 NHN은 12월에 ‘네이버 뉴스 이용자 위원회’를 발족할 예정이다.

SK컴즈의 뉴스 편집자 가이드

① 뉴스 편집자는 언론사가 제공한 기사를 임의적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

② 언론사가 제공한 기사 제목은 변경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단, 원래 제목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과장됐다면 수위를 완화할 수는 있다.

③ 오보를 유통시켜 피해자가 발생했다면 언론사의 정정 보도나 후속 보도를 신속히 게재한다.

④ 선정적인 뉴스 편집을 신고할 수 있는 장치를 운영한다.

⑤ 뉴스의 오락화를 막기 위해 연예와 스포츠 분야 기사를 20% 이내로 제한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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