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으로 가는 ‘★들의 비상구’

  • 입력 2006년 7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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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사무실. 현관에 들어가면 ‘△△기업’ ‘○○그룹’ 이름이 붙어 있는 출석부가 보인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50여 개의 ‘독서실형 부스’가 있다. 드문드문 초로(初老)의 신사들이 컴퓨터 화면을 지켜본다. 책을 읽거나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곳은 퇴직 기업 임원들의 ‘전직(轉職·outplacement) 지원’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 관리회사.

김진철(가명·45) 씨는 벌써 3개월째 이곳으로 ‘출근’ 중이다. 대기업 임원이었던 김 씨는 4월 중순 회사를 그만뒀다. 함께 회사를 나온 임원 10여 명 중 계열사 감사나 협력업체 경영진으로 ‘구제’ 받은 사람은 2, 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임원들은 김 씨처럼 전직 지원 회사로 출근한다.

김 씨는 “처음엔 약간 쑥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제는 출근할 곳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다. 좁은 부스이긴 하지만 자기 자리도 있고, 손님을 만날 응접실도 있으니 정신적으로 훨씬 안정되는 느낌이다. 다른 회사 퇴직 임원들과 친목 모임을 만들어 인간관계도 넓히고 있다. 그는 중견기업 부사장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 담당 컨설턴트와 ‘작전 회의’를 할 예정이다.

김 씨는 전직 지원 서비스를 받는 전형적인 40대 퇴직 임원이다. 전직 지원은 아직 국내 기업에는 생소하지만 외국에서는 매우 보편화되어 있다.

○ 사무실-비서 제공… 취업정보 연봉협상 등 패키지

전직 지원 회사는 퇴직 임원들이 새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전직 관련 교육과 취업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식적인 서비스 기간은 보통 6개월. 그동안 사무실과 간단한 비서 업무, 경우에 따라서는 골프 모임까지 주선해 준다.

취업에 관련한 사항은 취업정보 제공, 면접 준비, 연봉협상 조언 등 거의 모든 것이 ‘패키지 형식’으로 제공된다.

수억 원의 연봉을 받아 온 대기업 임원들은 퇴직 후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재계 관계자들은 “퇴직 임원 가운데 현직에 있을 때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놀고먹을 수 있는 사람은 15% 미만”이라고 귀띔한다. 85%의 퇴직 임원이 다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 충격… 배신감… 심리치료 프로그램 많아

퇴직 임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정신적인 혼란이다. 특히 회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온 사람들이라 심리적 충격과 배신감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연락을 끊고 두문불출하거나, 화병(火病)을 얻어 밤잠을 못 잔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전직 관리 회사들은 정신 치료와 비슷한 상담이나 코칭(coaching) 프로그램에 많은 공을 들인다. 일단 감정적 분노를 토해 내게 한 후에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도록 유도한다.

산업계에서는 이것을 ‘변화 관리’라고 부른다. 변화 관리의 대상에는 자신에 관한 것만 포함되진 않는다. 일 때문에 가정에 소홀했던 사람들을 위한 ‘행복한 가정을 위한 대화법’ 같은 과정도 있다. 종종 ‘신분’의 변화로 혼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퇴직 임원은 항공기 예약이나 은행 업무를 어려워한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e메일을 읽을 줄은 알지만 보낼 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전직 지원 컨설팅 업체 DBM코리아의 유인출 이사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선 일상생활에서의 적극적인 ‘홀로 서기’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선진국선 70%가 전직 프로그램 활용

국내에서 임원 전직 관리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많아야 1년에 100명 정도. 업계 추산으로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퇴직 임원의 5%도 채 안 되는 인원이다. 보통 퇴직 임원의 소속사가 내주는 서비스료는 6개월에 1000만 원 내외다.

다행히 전직 지원 서비스를 받는 이들의 90% 정도가 새 직장을 찾아간다. 대기업 출신 임원들은 눈높이만 약간 낮추면 중소·중견기업의 CEO나 부사장 등 꽤 괜찮은 자리로 옮겨 갈 수 있다.

선진국 기업에서는 전직 지원을 임원 계약서에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의 70%가 전직 지원 제도를 활용한다.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회사도 상당수다. 반면 국내에서는 라이트 매니지먼트와 DBM코리아 두 회사가 임원 전직 시장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외국 기업들이 임원의 전직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은 임원들의 충성심을 높여 기업의 기밀을 유지하고, 남아 있는 기존 직원들의 사기도 높이기 위해서다. 라이트 매니지먼트 이태형 이사는 “국내 기업들이 퇴직 임원 관리를 잘못해 기밀이 새어 나가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며 “전직 지원은 기업의 평판을 높여 외부 인재를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DBM의 전직 지원 프로그램 자료: DBM코리아

준비자기평가·발견재취업 준비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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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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