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회장 사전영장]긴박했던 26일 하루

  • 입력 2006년 4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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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따라”정상명 검찰총장이 27일 외부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대검청사를 나와 승용차에 오르고 있다. 정 총장은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해 ‘법과 원칙’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법에 따라”
정상명 검찰총장이 27일 외부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대검청사를 나와 승용차에 오르고 있다. 정 총장은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해 ‘법과 원칙’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최종 결심을 해야 하는데 정말 힘들다.”

정상명(鄭相明) 검찰총장은 최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법 처리 수위에 대한 조언을 구하면서 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 총장은 정 회장이 조사를 받고 귀가한 25일부터 26일 밤 12시까지 꼬박 이틀 동안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정 총장은 26일 오후 7시 퇴근하면서 기자들을 만나 “결심은 했지만 발표는 내일 하겠다”고 말했다. 왜 정 총장은 결심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결심 ‘사실’만 미리 공개했을까.

또 밤새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검찰 고위 관계자는 “당시까지만 해도 정 회장의 불구속 수사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26일 오후 정 회장이 비자금 조성 및 용처 수사 등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전해 오면 정 회장을 불구속 수사할 여지가 있음을 현대차그룹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현대차그룹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정 회장 대신 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구속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었던 것.

현대차그룹은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대가에 대한 손익 계산에 분주했다.

그러나 정 회장 측이 이날 밤늦게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는 입장을 전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현대차그룹은 곧장 검찰에 이 같은 내용을 통보했고 정 총장은 26일 밤 12시경 수사팀에 정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라는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를 사실상 지휘해 온 정 총장은 전현직 검찰 고위 간부 등 사회 각계의 조언을 구했다.

특히 정 총장은 지인인 실물 경제인 및 전문가들로부터 정 회장 공백이 현대차그룹과 국가 경제에 미칠 파장 등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정 총장은 정 회장 공백이 가져올 사회 경제적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판단이 서지 않아 최종 결심을 미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또 정 회장 구속이 단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 투명성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수(朴英洙) 중수부장 등 수사팀이 이날 오후 5시경 수사 결과 보고서를 전달하자 정 총장은 이 같은 종합 판단 아래 수사팀 의견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총장은 정 회장에게 마지막 기회를 한 번 더 주겠다는 입장을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얘기다.

결국 정 회장 측이 검찰의 최후통첩을 거부하면서 수사팀의 원칙론이 자연스럽게 최종 확정됐다.

검찰은 정 회장이 구속되면 비자금의 용처 수사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정 총장은 27일 오전 9시 출근길에 “판단 기준이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법과 원칙”이라고 대답했다.

우여곡절 끝에 정 총장의 고민은 결국 경제 논리보다 법 논리로 마무리됐다.

검찰 내부에서는 정 총장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격언에 충실했다는 평가가 많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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