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정책 타깃, 물가서 자산 거품으로

  • 입력 2006년 2월 2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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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동안 ‘미국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퇴임을 앞두고 아쉬운 점을 하나 꼽았다.

1990년대 말부터 형성된 정보기술(IT) 거품을 미리 잡지 못했다는 것.

2000년 3월 5,000이 넘었던 나스닥지수는 이후 2년 6개월 동안 75%나 폭락해 미국 경제가 심한 침체기를 맞았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경기 부양을 위해 2001년부터 무려 13번이나 금리를 낮춰 정책금리를 6.5%에서 1%로 떨어뜨렸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미리 금리를 올려 IT 거품을 조금씩 제거했다면 이러한 경기침체를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다.

예로부터 중앙은행의 가장 큰 임무는 물가안정이다. 하지만 최근 ‘자산가격의 거품’을 빼는 임무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은 이미 주택 가격의 거품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행 역시 부동산 가격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직면해 있다.

○美-IT 日-주가 거품빠지며 경기침체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1970∼80년대 초 남미의 경제 위기, 1980년 북유럽 3국의 금융 위기, 1990년대 한국과 동아시아의 경제 위기는 공통점이 있다.

물가는 안정된 상황에서 주식 부동산 금 등 자산 가격이 급격하게 올랐고 이것이 무너지는 순간 예외 없이 경제 위기를 맞았다는 것.

일본은 1985∼89년 실질적인 물가상승률은 0%에 가까웠지만 주가는 3배로 뛰었고 금은 그 이상 뛰었다. 일본은 그 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경기 침체를 겪었다.

한국도 물가상승률이 1991년 9.3%에서 1997년 4.4%로 떨어졌지만 주가 등 자산 가격은 급격하게 올랐다.

○경기가 좋아져도 물가는 안 오른다(?)

경제가 좋아지면 국민소득 증가→소비 증가→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공식이 깨져 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주요 국가의 물가상승률은 1∼2%에 머물고 있다.

중요한 이유는 중국이다. 중국이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저가 제품을 쏟아내면서 물건값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동안 미국의 운동화와 의류 가격은 평균 11% 하락했다.

미국의 한 연구기관은 “중국 효과로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포인트 낮아졌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다른 이유는 IT의 발달로 생산성이 높아지고 단위당 노동비용이 줄고 있다는 점. 따라서 기업은 물건값을 올리지 않고도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영국 등 3개국, 선제공격에 나서다

과거 거품 붕괴로 경기 침체를 경험했던 영국 호주 뉴질랜드의 중앙은행은 2003년부터 집값을 잡기 위해 물가 안정에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금리를 올렸다. 이에 따라 연간 20%를 넘던 집값 상승률은 지난해 0%로 떨어졌다.

머빈 킹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장기적으로 주택 가격의 거품이 꺼지면서 경제가 침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단기적인 금리 인상을 택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2004년 6월부터 14번이나 금리를 올렸다. 경제 호황과 고유가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을 줄이기 위한 것이지만 전문가들은 주택 가격의 거품을 빼는 목적도 숨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벤 버냉키 신임 FRB 의장은 2002년 논문에서 “중앙은행은 자산 가격의 거품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고 설사 거품이 형성됐다고 하더라도 금리정책은 효율적인 수단이 못 된다”고 썼다.

○한국 부동산 거품잡아야 ‘순항’

한국은행은 이달 초 콜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한은은 “경기 회복에 대한 확신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부동산 가격 안정도 감안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디 셰 씨는 “한국은 자산 가격 거품에 직면해 있으며 한은의 콜금리 인상은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경제연구원장은 “한은의 금리 인상 시기가 물가 안정 측면에서는 적절했지만 자산 가격 측면에서는 늦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은은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를 유지했지만 이 때문에 주택담보대출 급증과 부동산 가격 급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물가 안정을 1차 목표로 삼는 것은 맞지만 자산 가격 거품에 더욱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박사는 “세계 경제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으므로 금리는 물가 안정 외에 자산 가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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