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잘 못굴리는 ‘금융문맹’ 많다

  • 입력 2005년 10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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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외국계 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하는 백모(35) 씨는 최근 증권사와 은행에서 일하는 대학 동창들과 만났다.

백 씨는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받은 돈과 월급에서 모은 돈을 합쳐 5000만 원 정도 있는데 어디에 투자하면 좋겠느냐”며 도움을 구했다.

하지만 그 돈이 9개월째 월급 통장에 들어 있다는 말을 들은 친구들은 핀잔부터 줬다.

“머니마켓펀드(MMF)나 환매조건부채권(RP)도 몰라? 연 이자가 3%는 되잖아. 저축은행에 넣었어도 이자가 150만 원은 붙었겠다.”

백 씨는 MMF나 RP가 일반 예금처럼 아무 때나 돈을 찾을 수 있는 수시입출금식 상품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요즘 너 같은 사람을 ‘음치’나 ‘몸치’에 비교되는 ‘돈치’라고 부른다”는 친구들의 놀림이 이어졌다.

예금 금리가 연 4% 안팎에 머무는 시대. 30, 40대 직장인들에게도 노후 대비가 큰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증시 활황에 힘입어 펀드 계좌는 700만 개를 넘어섰다.

그러나 금융 소비자 대부분은 금융에 대한 기초지식조차 없거나 수준이 매우 낮은 이른바 ‘금융문맹(financial illiteracy)’ 상태로 나타났다.

본보 취재팀이 종합자산관리 서비스업체인 FPnet과 함께 자산관리전문가(FP) 10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고객의 재테크 실력이 보통 이하’라는 대답이 전체의 86.2%(94명)였다. ‘심각하게 낮은 수준’이라는 대답도 2.8%(3명)였다.

고객 10명 중 9명이 금융문맹에 가깝다는 뜻이다.

‘고객이 노후 준비를 잘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73.4%(80명)는 ‘준비가 부족하다’, 10.1%(11명)는 ‘전혀 안 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87.2%(95명)는 ‘30, 40대 직장인이 재테크 관점을 바꾸고 근본적으로 인생 계획을 다시 짜지 않는 한 20년 후 노후 생활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부모 세대의 금융에 대한 무지는 자녀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1월 수도권 거주 청소년 1334명을 대상으로 금융 이해력을 측정한 결과 평균 점수는 40.11점(100점 만점)이었다.

이는 선진국에 비해 10점 이상 낮은 것으로 금융문맹이 ‘세대 이전’되고 있음을 뜻한다.

FPnet 민주영(閔柱榮) 금융컨설팅팀장은 “지금 30, 40대 직장인에게 금융 지식은 생존의 필수 요소”라며 “글자를 깨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심정으로 금융 지식을 쌓아야 ‘돈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문맹(financial illiteracy):

금융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을 글자를 모르는 문맹(illiteracy)에 빗댄 말. 1997년 미국 금융교육 기관인 점프스타트(JumpStart)가 자국 청소년의 금융 지식 수준을 조사한 뒤 새로 만든 용어. 한국에서는 음치나 몸치에 비교되는 ‘돈치’, 문맹이나 컴맹 등에 빗댄 ‘돈맹’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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