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에 신용대출 신청해보니…

  • 입력 2005년 9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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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은행들이 대출을 못해 줘서 안달이라는데…. 내겐 왜 이리 문턱이 높은 거죠?” 본보 취재팀의 의뢰를 받아 8개 시중은행에 대출을 문의한 이수진(가명·26·여) 씨는 충격으로 얼굴이 벌게졌다. 8개 은행 가운데 5곳에서 대출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규제하자 은행들은 앞 다퉈 신용대출 확대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일반 서민에게 은행 문턱은 여전히 높았다.》

본보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 씨와 대기업 KT에 다니는 김기주(가명·34) 차장에게 의뢰해 각각 8개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창구를 다니게 했다. 그 결과 중소기업 직원은 아예 대출이 불가능한 곳이 많았다. 대출 조건도 은행마다 천차만별이었다.

심지어 각 은행의 대출 조건을 비교하면 신용을 의심받아 불이익을 주는 일까지 있었다.

○신용대출 조건 직접 물어보니…

김 차장의 연봉은 5000만 원. 이미 신용대출 2000만 원과 보증대출 2500만 원을 받은 상태다.

연봉 2000만 원인 이 씨는 지난해 신용카드 대금 30만 원을 15일 연체한 적은 있지만 빚은 없다. 이 씨의 직장은 연 매출액 60억 원 규모로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홍보대행사.

그런데도 8개 은행 중 이 씨가 대출이 가능한 곳은 3군데뿐이었다. 겉으로는 “급여이체 등 거래실적이 쌓인 은행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믿을 만한 직장이 아니지 않느냐’는 속내를 금세 읽을 수 있었다.

‘근무 경력이 짧다’, ‘미혼이다’, 심지어 ‘여성이어서 안 된다’는 말도 들었다.

대출이 가능한 곳도 조건은 나빴다. 최대 대출금액은 500만 원. 대출이자는 연 7%에서 22.8%까지 들쭉날쭉했다.

김 차장은 이보다 나았다. 우리은행과 조흥은행은 기존 대출 때문에 추가 신용대출이 안 된다고 했지만 나머지 6개 은행에서는 2000만∼4000만 원을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금리는 연 5.67∼11.45% 수준이었다.

김 차장은 “대출을 받는 데 직장이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고 했다.

○직장만 번듯하면 신용대출?

은행 신용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는 다니고 있는 회사와 연봉이었다. 이 기준에 못 미치면 “거래은행으로 가라”고 했다.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과거 연체한 적은 없는지 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거래은행 운운하는 것은 사실상 ‘당신은 신용대출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이라며 “갚을 능력이 되면 왜 다른 은행으로 보내겠느냐”고 말했다.

은행들은 수천 개 기업의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다. 신용대출을 원하는 고객이 다니는 회사가 이 안에 들어 있지 않으면 대출이 안 되거나 한도가 매우 낮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거래은행으로 가 보라는 권유도 일리는 있다.

은행들은 고객의 월평균 통장 잔액을 조사해 포인트를 부여한다. 예컨대 한 달 평균 잔액이 50만 원이면 100점, 100만 원이면 200점을 주는 식이다. 이 포인트가 쌓이면 통상 대출이 어려운 고객도 적은 돈이나마 대출받을 수 있다.

○대출 조건 물으면 불이익

김 차장은 가장 조건이 좋았던 하나은행에 최근 실제로 신용대출을 신청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대출금리가 처음 문의할 때보다 0.4%포인트 높아진 것.

“여러 은행에 대출조건을 조회하면 양질(良質)의 고객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는 은행측 답이 돌아왔다. 물건 고르듯 ‘대출상품 쇼핑’을 하면 손해라는 얘기다.

김 차장은 “은행마다 조건이 다른데 알아보지도 말고 아무 곳에서나 대출을 받으란 말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 임종오(林鍾伍) 론센터 팀장은 “억울한 사람도 많겠지만 은행 신용관리 시스템은 일반적인 경우를 상정해 기계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용에 불이익을 받는 사유는 이 밖에도 많다.

현금서비스를 받거나 보증을 많이 서도 감점 요인이다. 교통범칙금 등을 제때 내지 않아 소액이라도 압류당하면 대출이 안 되거나 대출금리가 치솟는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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