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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9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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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면접에서만 100번 넘게 떨어지며 구직에 도전했던 하만재(河萬宰·30) 씨는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부산외국어대 일본어과에 편입해 지난해 8월 졸업한 하 씨는 채용전문업체 인크루트가 주최한 실업 사연 공모전에서 1등상을 받아 사연이 소개됐다.
본보에 첫 보도가 나간 지 5개월이 지난 지금, 새내기 회사원이 됐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하 씨는 일본어 통역 일을 하며 번역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동아일보에 기사가 나간 뒤 10여 개 업체에서 면접을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실제 면접을 보기도 했고 한 대기업과 몇 군데 중소기업에서 입사하라는 제안도 받았습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백수 탈출’이 눈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하 씨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너무 쉽게 기회가 찾아온 것 같아 당황스러웠습니다.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고민도 됐죠. 당장은 수월할지 모르지만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길을 선택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며칠간 고민한 끝에 하 씨는 결국 입사를 포기했다.
“주위에서 ‘배가 불렀다’ ‘미쳤다’며 호되게 질책했습니다. 부모님도 입사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셨고요. 하지만 편하게 주어진 일자리는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대신 통역·번역가가 돼 정년에 관계없이 평생 일할 수 있는 전문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 길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후회 없는 길이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이제야 내 길을 찾은 거죠.”
하 씨는 이런 생각을 설명하며 부모님을 설득해 허락을 받았다. 6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통역 일을 시작했다. 현재 하 씨는 인천에서 일본인 바이어의 통역을 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일이 계속되기 때문에 올해 추석에는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지 못한다.
“귀향을 못하는 대신 부모님께 통역으로 번 돈을 드릴 생각입니다. 추석 때 용돈을 드리기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비록 고향에 가지는 못하지만 미래를 명확히 설계했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게 돼 올 추석은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안하고 넉넉합니다.”
하 씨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평생 간직할 생각이다.
“무엇 하나 특별한 것 없는 저에게 큰 관심을 갖고 도와주시려는 것에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 어르신은 직접 만나자고 하여 뵈었더니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할 사항과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방법까지 조언해 주셨어요. 꼭 전문 통역·번역사가 돼 씩씩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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