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싶고 되고싶은 2005 과학기술인]<2>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

  • 입력 2005년 9월 9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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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에게 물레방아는 ‘그 때 그 시절’의 한 자락을 상상하는 추억의 장치다. 하지만 주성엔지니어링의 황철주(46) 사장에게 물레방아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한(恨)이 덜컥거리며 굶주림의 기억을 돌려내는 장치다. 그의 어린 시절을 사진첩으로 비유해보자. 두텁고 빛바랜 ‘가난의 겉장’ 뒤에 들판에서 ‘편하고 신나게’ 놀아본 자연의 경험과, 방앗간에서 곡식이 가루로 변하는 오묘한 공정을 지켜본 기계의 경험이 소중한 흑백사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 방앗간집 아들 ‘산업의 쌀’을 빻다

어린 시절 남보다 잘난 것도 잘한 것도 없던 그는 물레방아가 돌리는 가난의 물살에 떠밀려 공고를 졸업한 뒤 울산의 작은 공장에서 근무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에 가라고 종용했다. 서울서 울산까지 정말 ‘도시락 싸 들고’ 찾아와서 보채는 것이다. 대학에 진학할 수 없는 형편을 이해한 친구는 “그러면 전문대라도 가라”고 양보했다.

전문대에 다니다가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던 그에게 또 다른 좋은 친구가 등장했다. 전문대 친구가 찾아와 “너는 꼭 4년제 대학에 가야 된다”며 또 ‘권학문(勸學文)’을 노래하는 것이 아닌가. 친구는 자기 돈으로 책까지 사다 안기며 대학에 갈 것을 강권했다.


“기회는 모든 사람을 스쳐 지나가지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준비된 사람뿐이다.” 황철주 사장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조언한다. 사진 제공 사진작가 김연정

간신히 대학을 마친 그는 반도체장비를 파는 외국인 회사에 취직했다. 말주변도 없고 내성적인 성격에 술도 잘 마시지 않고, 노래나 춤은 오히려 고객을 실망시키는 ‘샌님’이 영업에 도전한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변신이었다.

“의지와 의욕을 갖고 있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반드시 생깁니다. 그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십시오. ‘똑똑하다’는 부러움보다는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십시오. 기회는 모든 사람을 스쳐 지나가지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준비된 사람뿐입니다.”

○ 신뢰로 반도체 장비 세계시장 이끌어

외국인 기술자를 뒷바라지하는 업무만 하던 가운데 한 반도체장비에 고장이 나는 바람에 공장 전체에 난리가 났다.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자 그가 보란 듯이 나서서 문제를 거뜬히 처리했다. 이때부터 그는 신뢰를 얻어 장비를 만질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한번은 반도체 증착장비를 개량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서 장비에 손을 댔다가 완전히 망가뜨렸습니다. 그 장비가 당시 4억 원 정도였으니 지금 한 20억 원 정도 할 겁니다. 그렇게 비싼 장비를 납품회사의 신출내기 영업직원이 망가뜨려 버렸으니….”

당시 공장의 연구원들은 정말 고맙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건을 계기로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할 때 값비싼 장비를 기꺼이 빌려 주었다. 이때의 경험이 주성엔지니어링을 세계적인 반도체장비 회사로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7년 동안 살다시피 하면서 삼성전자 직원처럼 근무했다. 고객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면서 현장의 경험을 착실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바꾸어 나갔다.

그 결과 1993년 설립한 주성엔지니어링은 1999년 사상 최고의 액면가(64배)로 코스닥에 등록하고, 황 사장은 ‘포브스코리아’가 최근 선정한 국내 벤처 부자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다. 현재 주성엔지니어링은 세계 반도체 및 LCD용 장비 시장에서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물레방앗간에서 세계적인 반도체장비를 만들어 낸 황 사장. 아버지는 방앗간에서 쌀을 빻았지만 아들은 가업을 이어 ‘산업의 쌀’인 반도체를 빻고 있다.

■황철주 사장은

1959년 경북 고령군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정미소를 운영한 덕분에 어린 시절에 그는 수차(물레), 굴대, 방아채, 톱니바퀴, 그리고 벨트가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의 이치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학업과 취업을 반복하며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전자를 잠시 거쳐 ASM이라는 네덜란드계 기업에서 반도체 장비 영업지원 업무를 맡았다. 1993년 ASM이 한국에서 철수하자 주성엔지니어링을 창립하고 5년 만에 벤처기업대상 산업훈장 철탑을 수상한 데 이어, 2001년에는 ‘2000만불 수출의 탑’도 수상했다. 최근 50억 원을 투자해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뭐든지 하나라도 확실하게’ 할 줄 아는 젊은 인재를 찾아 장학금을 주는 즐거움을 준비하고 있다.

:청소년에게 한마디: 편하고 신나게 놀아라. 그러면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공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친구 잘 만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친구에게 '똑똑하다'는 부러움보다는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라.

허두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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