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5주년]“경영수업 톡톡히… 책임경영 지켜보라”

  • 입력 2005년 3월 31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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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계에서는 대기업 총수 일가(一家)의 후계 구도와 ‘차세대 경영자’들의 약진이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이미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에선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또 중견그룹에서도 젊은 ‘차세대 경영자’들의 약진이 뚜렷하다.

30대와 40대, 많아도 50대 초반의 젊음을 무기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들을 소개한다.》

최근 총수 자녀의 약진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현대차그룹.

정의선 사장은 사실상 ‘경영 수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책임 경영’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5세의 젊은 나이인 그는 2001년 상무, 2002년 전무, 2003년 부사장, 2005년 사장으로 오르는 등 초고속 승진 가도를 달려왔다.

정 사장은 기존에 맡았던 기아차 기획실과 기획총괄본부의 기아차 관련 연구개발(R&D) 및 마케팅 외에 해외영업본부와 해외공장 프로젝트, 재경본부 등 핵심 분야까지 맡게 됐다. 또 지난달 23일에는 경기 평택항에서 열린 기아차 수출 500만 대 달성 기념식에 회사측 대표로 참석하는 등 공개적 행보도 시작했다. 부친인 정 회장의 ‘현장 중시’ 성격을 물려받았다는 평을 듣는다.

또 정몽구 회장의 셋째 사위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부사장과 정의선 사장의 사촌인 정일선 BNG스틸 부사장도 최근 해당 회사 사장으로 한 단계씩 올라섰다. 정일선 사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4남인 고 정몽우 씨의 장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올해 주주총회에서 승진하지 않았다. 당초 전무 승진설이 적지 않았으나 삼성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내년에는 승진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상무는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를 시작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들에게서 1 대 1 ‘과외 교습’을 받고 있다.

LG그룹은 고 구인회 창업주의 장손인 구본무 회장이 오랫동안 총수를 맡고 있다.

딸만 둘인 구본무 회장은 지난해 11월 동생인 구본릉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 씨를 양자로 입적해 앞으로 후계구도와 관련해 눈길을 끌었다. LG그룹에서 분리된 LS그룹(옛 LG전선그룹)에선 구 회장의 당숙인 구자용 E1(옛 LG칼텍스가스) 사장과 구자균 LS산전 부사장 등 2세가 경영 전면에 나서 있다.

SK비자금 사건 등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SK㈜의 경영권을 둘러싼 소버린자산운용과의 한 판 승부에서 일단 승리해 입지를 강화했다. 최 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공격경영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롯데그룹에서는 신격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신 부회장은 신설된 호텔롯데 정책본부 본부장을 맡으면서 권한이 대폭 확대됐다.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와 세대교체를 특징으로 하는 올해 2월의 롯데 사장단 인사도 상당부분 그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풀이다.

신세계그룹의 차기 후계자인 정용진 부사장은 신세계 이마트와 백화점 부문에 번갈아 출근한다. 어머니인 이명희 회장과 아버지인 정재은 명예회장에 이어 3대 주주다. 정 부사장은 1995년 신세계에 입사해 신세계백화점 도쿄사무소와 기획조정실 그룹 총괄담당 상무 등을 거쳤다.

동원그룹은 김재철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동원금융지주 대표 겸 동원증권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한국투자신탁증권을 인수해 합병의 막바지 절차를 밟고 있다. 6개월 동안 원양어선을 타고 참치를 잡으면서 현장을 몸으로 체험한 일화는 유명하다.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은 최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이 회장은 향후 그룹을 제조·화학, 건설, 패션·유통의 3개 사업 군을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방침이다.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장남인 정지선 부회장의 입지도 확대되고 있다. 2003년 초에 부회장에 오른 그는 올해 2월 한무쇼핑 지분을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백화점에 매각하며 상속과 관련한 세금 문제를 마무리했다.

지난해 3월 대표이사 회장이 된 삼양사 김윤 회장도 요즘 주목받고 있다. 창업주의 손자로 ‘3세 경영인’인 김 회장은 1985년 9월 차장으로 삼양사에 합류한 뒤 관리본부장 겸 해외사업본부장 등을 거쳤다. 외환위기 때는 삼양사의 주축이었던 폴리에스테르 사업 부문을 과감히 정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외손자인 한솔그룹 조동길 회장은 ‘실무를 아는 CEO’로 통한다.

외환 위기 직후 한솔그룹이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을 때 당시 그룹의 주력이자 모태였던 한솔제지 신문용지 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등 굵직굵직한 구조 조정을 지휘했다.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아들 세 명은 경영 일선에 참여하기 전에 ‘국제 감각’을 키운 것이 눈에 띈다. ㈜효성 조현준 부사장, 조현문 전무, 조현상 상무 등 아들 3명이 모두 미국 변호사나 컨설턴트로 활동한 후 그룹에 합류했다.

대기업의 오너경영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적지 않은 한국적 현실에서 재벌가의 2,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데 대해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하지만 무작정 이들의 경영 참여를 미룰 수만도 없다는 게 주요 기업들의 고민이다.

외부 환경 또한 후계경영 구도가 안착하기엔 불투명한 요인이 적지 않은 편이다. 그룹 회장실에서 말 한 마디로 계열사를 철저히 좌지우지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상당부분 계열사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그룹 총수의 계열사 장악력도 예전보다는 많이 떨어져 있다. 2, 3세가 경영을 잘하지 못하면 선대에서 일궈 놓은 기업도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경영능력을 인정받으면 전문경영인보다 오히려 더 나은 성과를 보여 줄 가능성도 충분하다. 결국은 각자가 하기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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