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使 왜 싸웁니까” …10년 無쟁의 현대重 “정치투쟁 옛말”

  • 입력 2005년 2월 2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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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유사인 엑손모빌이 현대중공업에 주문한 ‘해상 원유생산 및 저장설비(FPSO)’의 출항을 앞둔 지난달 27일. 탁학수(卓學秀)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은 엑손모빌 경영진에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엑손모빌의 도움으로 작업을 훌륭히 마쳤습니다. 앞으로 현대중공업에 어떤 공사를 맡기더라도 노조가 책임지고 최고의 품질과 납기 준수를 약속드립니다.” 선박 건조를 의뢰하는 대부분의 선주(船主)들은 노사분규로 배가 제때 완성되지 못하는 것을 많이 걱정한다. 탁 노조위원장의 감사편지는 엑손모빌의 이러한 걱정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1980년대 말 전투적 노동운동의 대명사로 꼽혔던 현대중공업 노조. 그 강성 노조가 2005년 오늘 이렇게 바뀌었다. 무엇이 그들을 달라지게 했을까.

▽10년 연속 무쟁의(無爭議) 달성=1987년 민주화의 거대한 물결이 몰려오면서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노사분규를 겪었다. 기업과 노조의 적대적 관계는 극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현대중공업은 그 중심에 서 있던 회사였다. 1990년대 초반까지 ‘파업과 직장폐쇄’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1987∼1994년 노조가 총 290일 파업을 벌여 1조4226억 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했다.

하지만 1995년부터 노사 양측은 합의점을 찾았다. 노조는 소모적인 정치적 이념보다는 직원들의 권익 향상으로 방향을 돌렸다. 또 회사는 근로자에 대한 인간적인 대접과 복리후생 증진에 주력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노사분규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는 진기록을 세웠다.

▽노조, 직원들에게 눈을 돌리다=유상구(劉上邱) 현대중공업 노조 사무국장은 “1987년 이후 노조는 ‘전투적 신화’에 매몰돼 대립적이고 소모적인 노사관계를 지속했다”고 시인했다.

과거 현대중공업 노조의 과격한 파업은 노동운동단체와 정부의 대리전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직원들의 권익은 항상 뒷전으로 밀렸다. 차츰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신뢰를 잃었다. 1995년부터 노조는 회사의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는 직원들에게 눈을 돌렸고 회사와 대립하기보다는 대화와 협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회사, 성과급과 복리후생 강화=이균재(李均在) 현대중공업 노사협력실장은 “경영실적에 바탕을 둔 성과급 지급이 노조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현대중공업은 1992년 매출액과 품질개선, 산업재해 등을 고려한 성과급 제도를 도입해 1992년과 1993년 각각 200%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하지만 1994년 63일의 장기파업을 겪으면서 매출액이 뚝 떨어져 성과급 비율이 67%로 낮아졌고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에 따라 2개월간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그러자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왜 우리와 상관없는 정치적 이념을 위해 손해를 봐야 하느냐’는 비판이 강력히 나왔고 이것이 노조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회사는 또 직접적인 임금인상보다는 근로자들에게 인간적인 대접과 복리후생 제도를 강화해 노조의 신뢰를 얻는 데 주력했다.

지금 현대중공업은 변화된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세계 1위 조선소의 명성을 지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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