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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1월 9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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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의 위기를 거론할 때면 흔히 내세우는 원인이 대기업의 횡포, 정부의 정책 부재(不在), 금융권의 자금 회수 등이다. 하지만 ‘중소기업 책임론’을 주장하는 중소기업인이 있다.
냉난방기 제조회사인 템피아의 왕화식(王化植·44) 회장. 그는 1998년 한국 최초로 6단계 히트펌프 시스템을 개발해 관련 업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히트펌프 시스템은 에어컨의 작동원리를 응용한 것으로 대기 중의 열을 이용해 난방과 냉방을 하는 것.
기존 히트펌프 시스템은 영하 5도 이하에서는 실외기가 얼어붙어 작동이 안 됐다. 하지만 왕 회장이 직접 개발한 6단계 시스템은 이를 극복해 영하 20도에서도 가동되는 게 특징이다.
2002년 특허청 주관 우수 특허 대상, 2003년 대한민국 기술대전 대상 등을 수상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왕 회장이 주장하는 중소기업 책임론의 배경도 이 같은 본인의 노력에 기반을 둔다.
“중소기업들도 좋을 때가 있었어요. 한창 호경기였던 1990년대 중반 중소기업들이 뭘 했나요. 흥청망청 돈을 쓰다 이제 와서 대기업이나 금융회사 탓만 하고 있는 게 오늘날 중소기업계의 현실입니다.”
내수 부진의 책임도 상당 부분은 중소기업의 책임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소비자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강요해선 안 됩니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먼저 열어야지요. 이를 위해서는 좋은 제품을 값싸게 만드는 길밖에 없습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그가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을 운영하게 된 배경은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 30대 중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던 중 에어컨 실외기에서 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이를 응용한 온풍기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이후 독학으로 공조(空調) 시스템을 공부한 뒤 7년간 집안 재산 70억원을 쏟아 부어 6단계 히트펌프 시스템을 개발했다. 자신을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32대손이라고 소개한 그는 “집안이 유복했던 탓에 초기 투자금을 댈 수 있었지만 개발을 마칠 때는 그야말로 빈털터리가 됐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기존 제품보다 전기 사용량을 60% 이상 줄일 수 있는 데다 가격도 저렴해 제품 판매는 호조를 보였다. 올해는 3월까지 대리점을 현재의 100여 개에서 300여 개로 늘리고 매출도 2000억원을 달성한다는 계획.
“불경기에 중소제조업체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은 기술 개발뿐입니다. 제발 다른 중소기업들이 이를 뼛속 깊이 깨닫고 기술 개발에만 매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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