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에게는 크리스마스가 ‘노는 날’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어린 내 형제들에게는 ‘선물 받는 날’이었다. 물론 그 기대는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낭만적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가능했다.
아버지는 생일이나 명절에 늘 무언가를 들고 집에 들어오셨다. 어떨 땐 사과였고 어떨 땐 붕어빵, 눈깔사탕이었으며 때론 비누 등 생활용품 세트였다. 먹을거리엔 환호하고 생활용품 세트에는 실망하던 우리들.
난 “이게 내가 받은 선물”이라고 친구들 앞에 자랑할 만한 폼 나는 무언가가 그때까진 없었다. 어느 크리스마스에 아버지가 사다주신 플라스틱으로 된 빨간 장화 과자선물세트는 그래서 과자를 먹어치우고, 장화 끝이 반짝거릴 만큼 오래 만지작대고도 한참을 내 보물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과자 한 봉지도 아니고, 달콤한 사탕이며 고소한 과자가 여러 개 들어있었던 그 예뻤던 빨간 장화는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에게 자랑거리였다.
내 지인의 추억도 있다. 어려운 집안 사정에 일찌감치 눈뜬 ‘애늙은이’였던 이 친구는 부모님께 선물을 사달라고 한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진짜 갖고 싶은 게 있어서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고 한다. 바로 ‘티티표 연필깎이’.
아버님은 연필깎이를 사다 주시면서 아들이 원한 것보다 좀 더 비싼 제품을 사 주셨는데 그건 티티표가 아니었다. 아들은 속이 상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성인이 된 이 친구는 곧 태어날 아기에게 ‘맞춤형 선물’을 해주는 아빠가 돼야지 하고 생각할 뿐이다.
요즘 다시 과자 등 저가형 선물세트가 인기를 끈다고 한다. 다시 그때처럼 ‘없는 살림’을 꾸려가는 집이 늘어났나 싶어 마음이 애잔하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내 친구처럼 어린 시절 선물의 추억을 떠올리며 부모님의 마음에 감사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날 것이다.
대한민국 엄마 아빠, 파이팅!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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