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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9월 24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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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법원 판결은 대기업의 ‘특수관계인’이 계열사의 지원으로 이득을 취한 행위가 공정거래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사법부의 첫 확정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앞으로 비슷한 성격을 지닌 다른 기업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또 공정위의 공신력에도 타격을 줘 앞으로 부당내부거래 조사 등의 방향 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힘도 시간도 너무 들었다”=이번 소송은 한국의 최대 기업인 삼성과 정부 대기업 정책을 주도하는 공정위의 ‘대결’로 관심을 끌었다.
1999년 2월 삼성SDS는 이재용씨 등에게 신주(新株) 321만6738주를 주당 7150원에 인수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넘겼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비정상적으로 싼값에 주식을 넘겨 대주주 일가가 1600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공정위는 같은 해 10월 삼성SDS에 158억원의 과징금을 물렸고 이어 국세청도 이재용씨 등에게 모두 443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삼성측은 2000년 5월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내 2001년 7월 1심에서 승소한 데 이어 이번에 승소가 확정됐다. 이번 판결은 삼성이 국세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공정위와의 ‘지루한 소송’에서 이긴 삼성SDS측은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그러면서도 ‘체면을 구긴’ 공정위가 삼성의 기업활동에 대해 ‘보다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역풍(逆風)’도 우려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소송에서는 이겼지만 5년여를 끌어오면서 인력과 시간을 불필요하게 소모했고 기업활동도 위축됐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등이 이재용씨와 삼성그룹을 비판하는 ‘단골메뉴’였던 이 사건이 해결됨에 따라 삼성은 ‘후계구도’를 추진하는 데 따른 부담도 줄었다.
비슷한 소송이 걸려 있는 다른 기업들은 이번 판결이 자신들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면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공신력에 상처 입은 공정위=공정위는 “원심 판결을 확정한 것에 불과하다”며 의미를 애써 축소하면서도 조직의 신뢰성 실추 등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대법원이 계열사로부터 지원을 받아 특수관계인이 이득을 취했더라도 시장에서 공정한 거래가 저해됐다는 사실이 나타나지 않으면 ‘불공정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밝히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법원은 “변칙적인 부의 세대간 이전 등을 통한 소유 집중의 직접적 규제는 공정거래법의 목적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법을 무리하게 적용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아 온 공정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확산될 전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의 양금승(梁金承) 팀장은 “공정위가 법적으로도 맞지 않는 ‘고무줄 잣대’로 과도한 과징금을 매겨온 사실이 입증된 것”이라며 “공정위는 무리한 판정으로 더 이상 기업의 발목을 잡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특수관계인들이 부당 이득을 얻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됐지만 법률상 해석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라며 “향후 조사 방향과 소송대책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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