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노동계 夏鬪 뭐가 달라졌나]“노조 상대는 외국인주주”

  • 입력 2004년 8월 9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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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올해 노동계의 ‘하투(夏鬪)’는 종전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특히 외국인투자기업인 한미은행과 LG칼텍스정유의 파업에서는 파업에 대한 외국인 주주의 의견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이들 기업의 파업과정에서 회사가 노조와 타협해 ‘무난하게’ 사태를 해결하는 한국적 해결방식은 사라지고 노사관계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관철됐다. 한국 기업에서 외국인 주주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 이런 추세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외국인투자기업 “원칙에는 양보 없다”=LG칼텍스정유는 19일간 파업해 올해 대기업 파업 가운데 최장기간 기록을 세웠다.

LG정유 노조는 “국민적 우려를 고려해 현장에 복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상 ‘백기 투항’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 이 배경에는 국내 경영진의 강한 의지, 노조에 대한 여론악화와 함께 이 회사 지분의 50%를 갖고 있는 미국 칼텍스사(社)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파업과정에서 LG정유의 외국인 주주들은 파업이 장기화되더라도 노조에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말 것을 경영진에 주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권 파업사상 최장기간 기록을 세운 한미은행 파업도 마찬가지. 한미은행은 씨티그룹이 99.33%의 지분을 사들여 상장(上場)을 폐지했다.

한미은행 노조는 18일 만인 지난달 12일 회사의 안을 상당부분 수용하면서 파업을 중단했다. 노조는 ‘상장폐지 철회’ ‘독립경영 보장’ 등을 주장했지만 씨티그룹을 대변하는 사측은 “경영권 관련 사안은 협상대상이 아니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

▽노조의 상대는 외국인 주주=두 기업은 파업이 끝난 뒤에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과 불법행위를 한 노조 관계자에 대한 처벌 등이 철저히 이뤄질 전망이다.

LG정유는 파업사태와 관련해 노조원 62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불법행위를 한 65명은 고소 고발했으며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고수하기로 했다. 한미은행도 노조위원장 등 2명이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됐고 파업기간 중 임금도 주지 않기로 했다.

많은 한국기업이 파업이 끝난 뒤 사실상 노조 집행부를 ‘사면(赦免)’해 주거나 ‘이면(裏面)합의’를 통해 위로금 형식으로 파업기간 중 임금을 보전해 주는 것과 크게 다른 것.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선을 의식해 섣불리 중재에 나서지 않은 것도 차이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裵祥根) 연구원은 “이미 많은 한국 기업에서 노조의 상대는 한국인 기업주가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를 중시하는 외국인 주주인 만큼 앞으로 파업관행에는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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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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