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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15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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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는 윤 사장이 이 같은 악조건을 무릅쓰고 공장을 이전한 데 대해 중국의 저임금 때문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고민 끝에 중국행을 결심한 배경은 다른 데 있다. 공장 용지조차 구하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 때문이다.
윤 사장은 지난해 초 공장 용지를 구하려고 꼬박 두 달간 경기 파주시와 김포시 일대를 돌아다녔지만 수도권 공장총량제 등으로 단념해야 했다. 시청 직원들로부터는 지원은커녕 면박만 당했다. 그때 중국에서 공장 용지를 50년간 공짜로 빌려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와 ‘중국으로 가자’는 결심을 굳혔다.
중국이 한국 제조업을 급속도로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 상무부가 밝힌 올해 1·4분기 중국에 대한 한국의 직접투자액은 13억7400만달러. 사상 처음으로 일본의 대중(對中) 투자액을 추월하면서 홍콩과 버진아일랜드에 이어 세계 3위였다. 하지만 홍콩은 중국 경제권이고 버진아일랜드는 ‘조세 피난처’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국이 세계 최대 중국 투자국으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문가들은 “중국 투자 증가는 노동집약적 산업이 저임금 국가로 이전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의 ‘한국 탈출’에는 정부 규제, 반(反)기업 정서,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는 경제 외적 요인이 깔려 있는데다 경제 규모에 비해 산업 이전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에서 산업 공동화(空洞化)의 우려도 적지 않다.
▽한국 기업 중국으로, 중국으로…=한국 기업들의 중국 직접투자는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됐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1999년 중국에 대한 투자는 4억8000만달러였지만 작년에는 24억9000만달러로 418.7%나 늘었다. 4년 만에 5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경기 시흥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현재 이 지역 중소제조업체 가운데 156개사가 중국에 법인을 설립했으며 이 가운데 101곳이 2000년 이후 현지에 진출했다.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나 기업 관련 협회까지 중국행에 나서고 있다. 인천시는 작년 9월 산둥성으로부터 산업단지 조성을 제의받고 17개 도시를 대상으로 입지여건을 조사하고 있다.
부산상공회의소도 2002년 중국 칭다오(靑島)에 부산전용공단 61만평을 조성키로 협정을 맺었다.
첨단 기업들도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내년부터 국내 D램 생산라인의 일부를 중국으로 이전키로 했다. 삼성전자가 노동집약적인 반도체 후(後)공정 라인을 중국으로 옮긴 적은 있지만 전 공정을 이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리온전기의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자(子)회사도 중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용 저하 등 부작용 현실화=중국 투자 증가는 이미 국내 고용 저하, 기술 유출 등의 역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1992년 이후 한국에서는 77만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같은 기간 한국 기업은 중국에서 10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실제 삼성은 지난해 국내에서 대졸 신입사원 6700명을 채용한 반면 중국에서는 대졸 및 일반 직원 9000명을 새로 뽑았다.
기술력 격차도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현재 한국은 기술정밀도에서 중국에 불과 1년 7개월 앞서고 있을 뿐이며 이 격차도 5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서중해(徐重海) 연구위원은 “제조업의 중국 이전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업 육성, 외국인 투자 유치, 산업구조 고도화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연구원(KIET) 김도훈(金道薰) 산업동향분석실장은 “산업 공동화를 막기 위해서는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정부 규제를 개혁하는 게 급선무”라며 “정부가 개입과 통제의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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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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