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중간결과]불법자금, 개인 유용했을땐 추징

  • 입력 2004년 3월 8일 19시 20분


기업체에서 정치권으로 유입된 불법 정치자금은 추징이 가능한가.

결론적으로 이 자금이 당 차원에서 사용됐다면 추징은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전달 과정에서 ‘배달사고’가 생겨 개인이 유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개인과 정당에 대한 추징 가능성이 엇갈리는 이유는 정당에 관대한 현행 정치자금법 때문이다.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한 처벌규정은 불법 정치자금을 직접 주고받은 사람 이외의 정당, 후원인, 법인 및 기타 단체를 처벌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 전달에 개입한 사람의 경우 처벌은 가능하지만 이들에게 추징까지 하는 것은 어렵다는 해석이 2심에서 나온 상태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와 관련된 판결은 이른바 ‘세풍사건’에 연루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이석희(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과 서상목(徐相穆)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1심에서 추징 없이 실형 선고만 내려졌던 것이 첫 사례다. 이 입장은 지난해 12월 고법에서도 유지됐다.

중간 전달 과정에서 자금의 교환이나 변형 등이 있었을 경우의 법리적 판단은 아직 확립된 것이 없다.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에서 받은 채권을 현금으로 교환해 한나라당에 전달한 서정우(徐廷友) 변호사의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삼성측에 뒤늦게 돌려보낸 채권을 제외한 나머지의 상당 부분을 현금으로 교환해 당에 전달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현금으로 교환한 부분을 개인이 유용한 것으로 해석해 추징해야 한다는 견해와 결국 당에 고스란히 전달됐으므로 추징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한나라당이 검찰 수사 착수 이후인 지난해 11월 초 삼성에 반환한 것으로 알려진 채권 138억원의 경우 추징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자금 전달 과정에 개입한 삼성그룹 임직원의 경우 정치자금법상 처벌대상에서 제외되는 정당이 아니기 때문에 기소됐을 경우 형사처벌을 면할 수 없고 부가형인 추징도 법리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개인이 유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징 구형을 한다는 입장이다.

안대희(安大熙) 중수부장은 8일 “구형은 하겠다. 하지만 현행 법률상 당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고 개인을 상대로 추징하게 된다”고 말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쏟아진 말…말…말…▼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는 정계 거물들이 대거 구속되면서 다양한 말들을 쏟아냈다.

한화에서 10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의원은 1월 구속되면서 “패장(敗將)이 가는 길”이라며 스스로의 잘못을 호도했다.

2002년 대선을 전후해 67억원대의 불법 자금을 받은 안희정(安熙正)씨는 지난달 재판에서 부산지역 기업인들에게서 정치자금을 받은 것에 대해 “정치인 안희정에 대한 ‘향토장학금’ 정도로 생각했다”고 진술해 비난을 받았다.

1조원대의 회사 돈을 부당하게 사용한 혐의로 구속된 손길승(孫吉丞) SK 전 회장은 1월 구속 수감되면서 “지난 세월이 큰 고비를 넘기다보니 난관이 많아 여러분이 염려하는 일들이 생긴 것”이라고 변명했다.

기업인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기 위해 대검 청사를 수차례 방문한 강신호(姜信浩)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이달 5일 방문 목적을 묻는 기자들에게 “두번 세번 오면 (검찰이) 더 잘 봐주지 않겠느냐”고 둘러대기도 했다.

검사들의 말도 흥미롭다. 안대희(安大熙) 중수부장은 작년 10월 언론브리핑에서 “선거 때 한몫 챙겨서 외국에 빌딩도 사고 자식들에게도 물려주고 그러는데 이건 축재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기업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발언하자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받아넘기기도 했다.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은 작년 말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에 대한 청와대측의 반발에 대해 “수사를 받는 사람이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개의치 않겠다”고 말했다.

이런 검찰을 두고 노 대통령은 작년 11월 “요즘 안 중수부장 때문에 나도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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