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칠레 FTA 국회비준 무산]‘농촌 票’에 발목잡힌 ‘수출 코

  • 입력 2004년 1월 8일 23시 41분


국회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2월 9일로 다시 연기됨에 따라 한-칠레 FTA가 장기 표류할 처지에 놓였다.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은 ‘농민 표’를 더욱 의식하게 돼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낙균(崔洛均)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투자실장은 “한국이 첫 FTA인 한-칠레 FTA에 발목이 잡혀 국제통상무대에서 외톨이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외신인도 하락과 수출 피해도 예상된다.

▽한국, 국제통상무대 외톨이=세계무역기구(WTO) 146개 회원국 가운데 현재까지 한 건의 FTA도 발효하지 못한 나라는 한국과 몽골 2개국에 불과하다.

무역의존도(국민총생산 대비 수출입 비율)가 70%에 이르는 한국이 국제통상의 큰 흐름에서 철저히 소외돼 있는 셈이다.

한-칠레 FTA 비준 지연은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일본 싱가포르 멕시코 등 다른 나라와의 FTA 체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병섭(金炳燮) 통상교섭본부 다자통상과장은 “칠레와 FTA를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다른 나라와 FTA 체결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FTA 추진 능력을 의심받기 때문이다.

칠레 의회는 6일(현지시간)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한국의 처리 결과와 연계시키겠다고 밝혔다.

한국이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을 과연 통과시킬지 의심스럽기 때문에 칠레가 먼저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수출경쟁력 약화=FTA 체결국끼리 특혜를 주는 무역은 2000년 기준으로 세계무역에서 65%를 차지했다. FTA 무대에서 소외되면 경쟁국에 비해 부담을 안고 수출해야 한다.

한국 상품은 이미 한-칠레 FTA 지연으로 칠레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됐다. 한국 자동차의 칠레 시장 점유율은 2002년 20.5%에서 작년 상반기 17.7%로 떨어졌다. 휴대전화 점유율도 10.7%에서 7.8%로 하락했다. 또 지난해 직물과 무선통신기기의 대(對) 칠레 수출은 2002년에 비해 30% 이상 감소했다.

유럽연합(EU) 등 지난해 칠레와 FTA를 발효시킨 나라는 관세 등에서 특혜를 누리며 칠레에서 한국의 입지를 위축시키고 있다.

한-칠레 FTA 지연은 중남미 시장 전체에 대한 한국의 수출 경쟁력도 떨어뜨릴 요인이다. 칠레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4개국으로 구성된 남미공동시장(MERCOSUR)과 FTA를 발효시켜 사실상 중남미의 거대한 경제블록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무역수지 흑자액의 절반가량을 중남미 시장에서 얻고 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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