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정부 앞에 당당한 日기업

  • 입력 2003년 11월 19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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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자동차 회장인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일본 경단련 회장은 최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찾아가 “도로공단 총재 인사가 잘못됐다”고 항의했다.

재계 추천 비례대표로 당선된 현직 참의원을 도로공단 총재에 임명한 것은 국회에서 재계의 발언권을 봉쇄한 조치라는 취지였다.

‘대통령형 총리’로 불릴 정도로 남에게 굽히기 싫어하는 고이즈미 총리도 오쿠다 회장에게는 부드럽게 대했다. 총리가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다”며 달래자 오쿠다 회장은 면담 후 “싸운 것이 아니라 경제계의 유감을 전했을 뿐”이라며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오쿠다 회장은 올 3월에는 구조개혁이 부진한 것을 질타하면서 “내가 총리라면 모든 각료의 사표를 받을 것이며, 사표를 안 내는 각료는 해임하겠다”고 일갈했다. 후생노동성이 정년 연장을 추진하자 담당 장관과 논전을 벌인 끝에 보류시키기도 했다.

일본 언론은 오쿠다 회장이 당당할 수 있는 힘의 원천으로 도요타자동차를 꼽는다. 그는 90년대 초 도요타가 적자로 신음할 때 과감한 경영혁신으로 도요타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

장기불황에 지친 일본 국민은 도요타가 최대이익 기록을 경신하고 미국시장에서 다임러크라이슬러와 포드를 제쳤다는 소식에 열광한다. 최근 부진한 소니를 향해서도 여전히 애정어린 관심을 보낸다. 미쓰비시전기 출신의 한 중소기업 사장은 “소니가 지금 고생하고 있지만 나는 소니 맨의 저력을 믿는다”고 말했다.

요즘 한국 대기업들의 수난을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시각은 이중적이다. 한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지만 ‘한국은 아직 멀었다’며 은근히 폄하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과 LG의 경영진이 불법 정치자금 제공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내수 위축으로 고전하는 산업계에 훨씬 센 마이너스 재료가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기업들이 올해 좋은 실적을 거둔 것은 구조조정을 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의 기업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고민하고, 정부와 국민은 그런 기업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존경한다.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富士夫) 캐논 사장은 “캐논은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 국민을 위해 열심히 뛰고, 그 대신 사회의 사랑을 받는다”고 말했다.

외환위기라는 시련을 겪고도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한 일부 경영진과 칭찬엔 인색하고 꾸짖는 데는 익숙한 사회. ‘자업자득(自業自得)’인 측면이 크지만 나라 안에서조차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한국 기업의 모습은 정말 보기에 안쓰럽다.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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