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노점상에 점령당한 '서울의 밤'

  • 입력 2003년 10월 1일 14시 20분


29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옆.

몇 개의 천막을 이어 붙인 초대형 포장마차 여러 개 중 한 곳에 들어갔다.

탁자 수가 80여개에 종업원도 예닐곱 명. 웬만한 술집보다 규모가 큰 것이 완전한 '기업형 노점상'이다. 빽빽이 들어찬 탁자와 의자는 보도를 2m, 차도를 3~4m나 점거하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알아서 피해 다녀야 할 정도.

30일 오전 1시경 2호선 강남역 부근을 지난 시민 원왕연씨(27·서초구 서초동)가 본 풍경도 마찬가지. 새벽이 되면서 자리를 잡은 대형 노점상들로 거리는 아수라장이다.

기업형 노점상이 서울의 밤을 점령하고 있다.

서울시의 집중 단속은 매년 이어지지만 노점상 수는 계속 늘어나고 시민의 보행권은 침해받고 있다.

▽현황=서울시에 따르면 올 7월 현재 노점상은 1만5800여개. 98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났다가 좀 줄어드는 듯 하더니 최근 다시 늘고 있다.

시는 올 3월부터 버스정류소, 쇼핑센터 주변 등을 '절대금지구간'으로 지정하고 노점을 집중단속 했지만 오히려 3월보다 1000여곳이 늘어났다.

특히 전체 노점상 가운데 15% 정도는 수십 개의 탁자를 놓은 기업형 노점상. 이들은 최근 종로, 압구정동 일대와 동대문 주변, 마포구 월드컵 공원 근처에서 성업 중이다.

시 관계자는 "이들의 권리금과 한 달 수입은 수천만 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노점 정비에 관한 민원도 2000년 2만613건에서 2001년 3만75건, 작년에는 3만2726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 홈페이지(www.seoul.go.kr)에 글을 올린 ID '불편시민'은 "노점상 규모가 거의 백화점 수준인데 이런 무법천지를 방치하는 의도가 뭐냐"고 따졌다.

▽진땀 빼는 서울시=노점의 단속 권한은 각 자치구가 가지고 있으며 이를 시가 감독한다.

서울시 건설행정과 노점정비팀은 매일 자치구와 함께 단속에 나서지만 돌아서면 다시 생긴다고 오히려 하소연이다.

실제로 특정 지역의 기업형 노점상을 단속하기 위해 해당 구와 함께 '디-데이'를 잡고 경찰 1개 중대를 동원해 10분만에 노점상을 걷어 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단속인력이 돌아간 뒤 지켜보니 15분 뒤 노점이 다시 서고 10분 만에 손님이 가득 차더라는 것.

김일기 노점정비팀장은 "의자와 탁자 등 노점을 금방 새로 만들 수 있는 집기들을 4세트까지 미리 준비해 놓고 있다고 들었다"며 "하룻밤에 3번 단속을 당해도 장사를 할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시민들 스스로 노점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시의 입장. 시는 앞으로 기업형 노점상에 부과되는 현재 50만원의 벌금을 500만원으로 10배 올릴 방침이다.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 김은희(金銀姬) 사무국장은 "노점상은 시민이 공유하는 공간을 사유화하고 있다"며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니 양성화하되 가능한 구간과 규격을 엄격히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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