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나연/알맹이 빠진 현대車 IR

  • 입력 2003년 8월 11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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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노사협상이 타결됐다지만 노조의 경영참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앞으로 해외진출에도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닙니까?”

11일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대회의실.

현대차의 기업설명회(IR)가 끝나갈 무렵 외국계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가 “질문을 드리기에 적합한 분인지는 모르겠지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답변은 우려했던 그대로였다.

단상에 서 있던 현대차의 재무담당 부사장은 “(내가) 답변하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들으나 마나한 대답이었다.

기관투자가와 애널리스트들은 회의장을 나서며 “알맹이가 빠진 IR”라고 푸념했다.

‘분기실적을 발표하려는 자리인 만큼 재무담당 임원이 참석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변명도 있었다. 하지만 IR가 재무설명회만은 아니다. 특히 현대차의 현안들을 생각하면 애널리스트들의 푸념은 당연한 것이다.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죽음을 계기로 현대차가 ‘대북(對北) 사업’의 지원에 나설 것이란 풍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노조의 경영권 개입을 부분적으로 허용한 것이 앞으로 경쟁력에 미칠 영향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정작 책임 있는 답변을 해줄 김동진(金東晉) 사장은 그 자리에 없었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김 사장은 울산에서 열린 노조와의 임금단체협약 조인식에 참석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 사장은 IR에 나서기를 꺼리는 CEO 가운데 한 명이다. 사실 현대차가 분기실적을 발표하면서 IR를 갖는 것도 올 5월이 처음이었다.

이러고도 현대차가 글로벌기업을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로벌기업은 IR에 경영진이 직접 나서서 주주에게 회사의 실적을 알리고 때로는 비난도 직접 감수한다.

기업 소프트웨어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인 SAP는 올 7월에도 헤닝 카거만 대표이사(최고경영자)가 직접 투자자들에게 실적을 발표했다. 3개월 동안의 실적은 물론 초미의 관심사인 인수합병(M&A)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명확히 답변했다.

주주들이 설명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실적만이 아니다.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경영진이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이며 어떤 비전과 전략으로 회사를 끌어갈지도 중요한 관심사다.

현대차는 2010년까지 세계 5위권 자동차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글로벌 톱5(GT5)’ 전략을 거듭 공언했다. GT5의 꿈을 이루려면 주주와 투자자를 무시하는 행태를 고쳐야 하지 않을까.

이나연 경제부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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