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문열/현대車 근로자와 경찰

  • 입력 2003년 8월 10일 18시 24분


3조원이 넘는 생산차질을 빚으며 한 달 이상 끌어오던 현대자동차의 쟁의가 노동계의 압도적인 우위 속에 막을 내렸다. 보도에 따르면, 노사정간의 오랜 쟁점이던 주5일 근무제가 타결되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1년에 남자 170일, 여자 182일 정도의 휴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대략 이틀에 한 번꼴로 노는 셈인데, 휴가 일수는 보도마다 약간 차이가 나지만 그 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점에서는 모두 일치하는 듯하다.

▼ 임금수준 세계 최고-세계 최저 ▼

연봉의 수준도 만만치 않다. 역시 보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연봉은 생산직 영업직 가릴 것 없이 5000만원을 넘어설 전망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40세 15년차 생산직의 경우 연간 6000만원을 웃돌 것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노동일수를 감안하면 세계 최고의 수준에서 그리 멀 것 같지는 않다.

실로 가슴 뿌듯한 일이다.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만이라도 세계 어느 나라도 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은 낮은 임금과 긴 노동시간에 고통 받는 이 땅의 모든 근로자들에게 하나의 이상을 제공할 것이며, 그들의 고단한 삶에 작지 않은 희망과 격려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 놓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승리에 축하를 보내지 못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쟁의의 사각지대(死角地帶)에 놓여 있는 다른 분야들 때문이다. 거꾸로 세계 최저를 감수하면서도 불만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찰이 우리 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처우는 불균형을 넘어 부당함까지 느끼게 한다.

우리 경찰의 과로는 이미 상식이 되어 있다. 일선 수사부서나 파출소에 근무하는 하위직 경찰에게 주5일제 근무나 40시간 노동 같은 소리는 꿈같이 들릴 것이다. 박봉도 마찬가지다. 우리 경찰의 열 명 중 일곱 명은 경사(15년차 연봉 3500만원 정도) 이하로 정년을 맞는다고 하니, 국민소득 대비로는 세계 최저 수준에 가까울 것이다.

하기야 경찰의 근로시간이나 임금을 일반 근로자와 나란히 두고 논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경찰에게는 기업체의 근로조건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직급이란 것이 있고, 특히 그 직급의 상승인 승진은 많은 휴가나 높은 연봉보다 더 효과적으로 축적된 모든 불평과 불만을 씻어낸다. 그런데 우리 경찰은 그마저도 세계 최저의 수준인 것 같다.

얼마 전 보도에 따르면 우리 경찰의 86.3%가 7급인 경사 이하인데, 이 비율은 국가 일반직의 평균보다 30%나 높은 비율이다. 그만큼 상위직(上位職) 정원이 적고, 따라서 승진의 기회 또한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른바 에펠탑형 계급구조의 효과다. 참고로 이웃 일본과 비교하면 그들 순사에 해당하는 우리 순경, 경장과 순사부장에 해당하는 경사가 경찰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일본 경찰의 배가 넘는다.

현대자동차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생산수단이다. 하지만 경찰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사회간접자본이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를 선도하는 산업역군이라면, 경찰관은 사회 안전의 버팀목이며 사회질서의 수호자다.

▼‘過勞경찰’ 일류서비스 가능할까 ▼

우리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자동차를 만들 것임을 확신한다. 그러나 경찰에게서 그 같은 수준의 치안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류로 대접하지 않고 일류의 서비스 산출을 강요하는 것도 착취다.

물론 경찰의 처우개선이나 직급조정은 말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국가 예산의 문제이고, 경찰청도 필요한 예산이 3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한다. 엄청난 액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기껏해야 이번 쟁의로 현대자동차가 입은 생산차질액의 100분의 1을 넘지 않고, 연간 추가로 부담해야할 인건비 상승분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대우하는 근로자를 만들어낸 나라에서 세계 최저에 가까운 과로와 인사적체에 시달리는 경찰의 처우를 개선해주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이문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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