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150억원 비자금수사 중대고비

  • 입력 2003년 8월 4일 18시 54분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대검 중수부(안대희·安大熙 검사장)가 진행 중인 ‘150억원 현대 비자금’ 사건 수사가 큰 고비를 맞을 전망이다.

정 회장은 2000년 4월 중순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을 통해 박지원(朴智元·구속)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150억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건넨 뇌물 공여자 신분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아왔다.

그동안 검찰 수사는 150억원 전달과 돈세탁에 깊숙이 관여한 김영완(金榮浣)씨가 미국으로 도피하면서 큰 진척을 보지 못한 상태. 따라서 공여자인 정 회장까지 숨지면서 검찰 수사는 설상가상의 어려움을 맞게 됐다. 검찰은 6월 말 ‘대북 송금 의혹 사건’ 특별검사팀으로부터 ‘150억원 현대 비자금’ 사건을 넘겨받아 광범위한 계좌 추적을 벌여 왔다. 특히 김씨의 귀국을 종용하기 위해서 김씨 주변을 압박하는 등 수사 강도를 높여 왔다.

그럼에도 비자금 전달의 핵심 ‘고리’인 김씨의 귀국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한 데다 계좌 추적 결과 현대측이 건넸다는 CD 150장이 박 전 장관에게 직접 간 것이 아니라 김씨가 사전에 제공한 현금 150억원의 ‘사후 정산’이라는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등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돈을 건넸다고 말한 정 회장마저 사망한 상태에서 수사는 더 깊은 미궁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미 정 회장에게서 필요한 진술을 충분히 확보해 수사에 큰 지장은 없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특검팀이 CD 구입 등 비자금을 조성한 김재수(金在洙) 현대그룹 경영기획팀 사장과, 돈을 박 전 장관에게 건넸다는 이 전 회장의 진술을 확보해 검찰에 넘겨주었기 때문에 비자금과 관련된 혐의 입증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은 앞으로 김씨의 귀국을 계속 종용하면서 정 회장을 통해 확보한 진술 등을 토대로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김상균·金庠均 부장판사)의 심리로 진행 중인 ‘대북 송금 의혹 사건’ 공판은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진행돼 18일 4차 공판에서 심리를 마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 회장에 대해서는 사망신고서가 법원에 접수되면 재판부는 공소기각 결정을 하게 된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재판 도중 숨질 경우 공소를 기각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이번 사건으로 재판 진행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 회장과 다른 피고인들 사이에 엇갈리는 진술 부분은 정 회장의 기존 진술에 근거해 사실관계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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