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4>3년연속 우수기업 선정 '삼성전기'

  • 입력 2003년 7월 27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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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기는 증권거래소가 주는 ‘지배구조 우수기업상’을 2001년 상이 생긴 이래 3년 연속 빼놓지 않고 수상했다. 사진은 7월2일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국제회의장에서 삼성전기 강호문 사장(오른쪽)이 강영주 증권거래소 이사장(왼쪽)으로부터 ‘지배구조 최우수기업상’을 수상하는 장면. 사진제공 삼성전기
삼성전기는 증권거래소가 주는 ‘지배구조 우수기업상’을 2001년 상이 생긴 이래 3년 연속 빼놓지 않고 수상했다. 사진은 7월2일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국제회의장에서 삼성전기 강호문 사장(오른쪽)이 강영주 증권거래소 이사장(왼쪽)으로부터 ‘지배구조 최우수기업상’을 수상하는 장면. 사진제공 삼성전기
《“삼성은 양(量)보다 질(質) 경영을 한다면서 카드 문제는 어떻게 된 겁니까?”

“정부의 카드 대책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지금 유상증자를 해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5월 26일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 16층. 삼성전기 이사회에 불려온 삼성카드 김석 전무는 사외이사들의 질책에 진땀을 흘렸다. 삼성그룹 계열사 가운데 카드사의 지분을 가진 여러 회사가 유상증자에 참여했지만 이사회에 카드사 임원까지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한 것은 삼성전기뿐이었다. 이사들은 결국 “카드업계 구조조정이 진전되면 오히려 삼성카드 지분의 가치가 올라가 이익을 볼 수 있다”는 판단으로 유상증자안을 통과시켰다.》


▼분기마다 IR…"주주 약속은 100% 지킨다" ▼

삼성전기 이사회에서는 이처럼 활발한 질의응답과 토론이 오간다.

모두 8명의 이사 가운데 절반인 4명이 사외이사. 1998년 이후 사외이사들의 이사회 참석률은 딱 한 번을 빼놓고 늘 100%였다. 삼성전기는 이외에도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기업설명회(IR)를 적극적으로 개최하며, 공시를 성실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삼성전기는 이 때문에 증권거래소와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가 공동 선정하는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3년 연속 선정됐다. 2001년 시작된 이 상을 3연패한 기업은 삼성전기가 유일하다.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정광선(鄭光善) 원장은 “삼성전기는 본사가 수원이면서도 주주들의 편의를 위해 주주총회를 서울에서 열고, 소액주주 의견을 받아들여 배당을 늘리는 등 주주 권리 보호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주주와의 약속은 100% 이행하라=삼성전기 강호문(姜皓文) 사장은 “주주와 한 약속에 대해서는 100% 이행을 원칙으로 하라”는 말을 임직원들에게 강조한다.

강 사장 스스로도 주주를 섬기는 일에 열심이다. 분기마다 직접 IR에 참가하고 있으며 올 상반기에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문에 해외 IR가 취소되자 투자자들에게 직접 e메일을 보내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클린(Clean) 경영’도 강 사장이 강조하는 말 가운데 하나. “숨긴다고 그 결과가 감춰지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더 큰 피해로 돌아온다”는 것이 강 사장의 신념이다.

삼성전기는 정기 주주총회를 하기 2주 전에 인터넷 홈페이지에 주총 의안, 개최 일시 및 장소를 올린다. 올해 2월 열린 주총에서는 10%의 배당을 안건으로 올렸으나 소액주주들이 늘릴 것을 요구하자 15%로 늘렸다.

삼성전기가 지배구조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주주들과의 관계에서였다.

이 회사 재무책임자(CFO) 김기영(金岐榮) 전무는 “회사가 성장 잠재력이 높은데도 그동안 증시에서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지배구조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해외 투자자들과 자주 만나면서 그들이 회사의 수익성 못지않게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고 지배구조 개선에 힘쓰게 됐다는 것이다.

▽사외이사 참석률 100%=사외이사 참석률을 높이기 위해 회사측이 들이는 공은 상당하다. 미리 안건을 보내주는 것은 물론이고 주요 안건일 때는 실무자가 직접 사외이사를 찾아가 설명을 한다.

김기영 전무는 “사외이사 참석률이 100%라는 것은 회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이사회가 명실상부한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고, 활발한 토론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주와 관련된 안건은 대부분 이사회에 올리기 때문에 매달 1번 이상, 연간 14회 정도 이사회가 열린다. 사외이사들이 “뭐 이런 것까지 이사회에 올리느냐”고 짜증을 낼 정도.

이 회사 사외이사인 조환익(趙煥益) 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은 “삼성전기는 지배구조뿐 아니라 사업구조 면에서 최근 많은 변신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연구개발을 많이 하고 있으며, 사외이사들도 여기에 적극 찬성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비판=반면 그룹 계열사로서 비판을 받는 면도 있다. 삼성전기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23.69%, 2003년 6월 말 기준). 이 밖에 외국인이 22.40%, 기타 53.91%다. 또 삼성전기는 삼성카드, 생명, 종합화학, 중공업, 경제연구소 등에 모두 3350억원어치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흔히 비판받는 ‘순환출자’의 한 고리를 이루는 셈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주영(金柱永·변호사) 소장은 “그룹 관계사에 대한 삼성전기의 출자가 점점 늘고 있다”면서 “거래소에 상장된 독립 기업이지만 그룹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이 작년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림에 따라 올 초 임직원들에게 특별보너스가 지급됐는데, 삼성전기는 그만한 실적을 올리지 못했는데도 그룹 방침에 따라 320억원의 보너스를 지급한 것을 예로 들었다. 김 소장은 또 “최고경영자(CEO)가 언론 인터뷰에서 삼성카드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결국 참여했다”고 지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대학원의 김우찬(金佑燦) 교수는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CEO에 대한 견제와 임면권”이라면서 “CEO의 임면권이 사실상 그룹 총수에게 있는 기업의 이사회가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국내 '지배구조 개선' 연혁 ▼


“삼성자동차에 우회지원을 하면 삼성전자 주주들이 피해를 본다. 어떻게 할 거냐. 또 삼성전자에서 월급 받는 사람이 그룹비서실에서 일하는 건 뭐냐. 명단을 내놓아라.”

98년 3월 27일 삼성전자의 주주총회는 장장 13시간이나 계속됐다. 비밀자료까지 들이대며 공세를 벌인 소액주주 대표에게 삼성은 쩔쩔맸다. 회사 시나리오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주총은 옛날 얘기였다.

이날 삼성전자의 주총은 소액주주의 힘을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다음해 삼성전자는 사외이사를 이사 총수의 3분의 1로 규정한 항목을 삭제하고 이사회의 경영위원회 감독 의무 책임 등을 규정하는 등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대폭 수용하는 방향으로 정관을 개정했다.

오너의 전횡을 막고 기업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다.

그러나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라는 개념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그보다 몇 년 전이다.

기업지배구조는 94년 10월 금융연구원이 발표한 ‘기업 경쟁력과 지배구조’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처음 등장한다.

이 보고서는 국내 기업에서 주식 소유집중과 경영층의 독단적 지배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다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사회 기능을 독립시키고 감사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과 이사회가 요식 기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사외이사의 수를 늘리고 실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사외이사에 대한 언급도 당시로선 이례적이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바로 현재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원장을 맡고 있는 정광선(鄭光善) 중앙대 교수다. 정 교수는 “당시에는 기업지배구조라는 말조차 생소하게 여기던 때였다”며 “그때부터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작업이 진행됐으면 외환위기는 오지 않았거나 왔더라도 그 강도가 훨씬 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후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인 95년 초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 다시 기업지배구조 개편 문제를 거론했다. 논란 끝에 정식의제로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이런 노력은 경제력 집중 억제와 소유분산 수준으로 접근하던 기존 재벌정책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노력은 학계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주도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대우그룹 해체, 현대의 ‘왕자의 난’, 삼성의 편법상속 문제, SK의 분식회계 문제 등이 이어지면서 지배구조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좋은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한 모범규준이 만들어졌고 이 규준에 맞춰 사외이사의 숫자와 권한을 늘리는 등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는 기업들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증권집단소송제를 내년 7월 도입키로 한 것도 기업에는 큰 부담이 되겠지만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진전을 이룬 것. 하지만 여전히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문제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이 제 가치보다 싼 값에 거래되는 것)’의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제도상으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실제 운용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하루빨리 지배구조 논의가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운동’의 차원이 아니라 ‘이해당사자의 권리구제’라는 이슈로 발전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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