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채권단 극한대치]석유 공급중단 안팎

  • 입력 2003년 5월 29일 19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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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동아일보 자료사진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동아일보 자료사진
《SK글로벌 채권단이 SK㈜가 SK글로벌에 공급한 석유제품의 대금지불을 중단하고 SK㈜는 이에 맞서 SK글로벌에 석유제품 공급을 끊었다. 이처럼 채권단과 SK㈜를 중심으로 한 SK그룹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계열사끼리 갈등을 벌이는 등 그룹 해체의 길을 밟는 듯한 모습이다. 또 채권단이 SK㈜ 등을 믿고 다른 SK계열사에 빌려준 돈을 회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칫 SK글로벌의 법정관리 충격이 SK그룹 대부분의 계열사와 한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해다툼이 감정싸움으로=채권단이 28일 법정관리 신청을 서둘러 결정한 것은 SK글로벌의 최대 주주인 SK㈜와 SK그룹의 태도에서 ‘성의’를 찾을 수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 여러 차례 채권단이 SK㈜의 SK글로벌에 대한 국내 매출채권 1조원 출자를 요구했으나 SK㈜와 그룹은 끝까지 9000억원(국내 매출채권은 4500억원) 이상의 출자는 불가능하다며 버텼다.

SK㈜ 관계자는 “채권단이 SK㈜에 대한 유전스(Usance) 제공중단, 신규여신 동결 등의 압박에 이어 석유제품 판매대금 지불중단이라는 강도 높은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어 자구 차원에서 제품공급을 중단했다”며 채권단을 비판했다. 이쯤 되면 서로 ‘막 가자는’ 행보인 셈.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당장은 SK㈜의 반응을 지켜본다는 입장이지만 SK측이 추가 출자전환을 거부한다면 각 채권은행이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어차피 SK글로벌이 청산되면 관계사 여신의 리스크가 커져 회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 어떻게 될까=손길승(孫吉丞) SK그룹 회장은 이날 SK글로벌 사태 발생이후 처음으로 가진 사내 공식행사인 ‘신임 임원과의 대화’ 시간에 참석, “SK글로벌은 반드시 살려 내겠다”고 강조했다. 또 SK그룹은 채권단에 재협상을 요청하는 등 그룹 해체를 막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협상에 응하는 한편 30일 최태원(崔泰源) 회장의 선고공판에 맞춰 SK그룹의 비도덕성에 대한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려던 계획을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실제로 채권단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더라도 청산결정이 나올 때까지는 3∼6개월 정도가 걸린다. 이 기간에 SK㈜의 이사진이나 소버린자산운용 등 대주주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회생 기회는 남아 있다.

특히 일부 SK그룹 관계자들은 선고공판에서 최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날 경우 경영권을 총동원해 자구안의 범위를 대폭 넓히고 채권단과 ‘대타협’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글로벌이 결국 청산으로 갈 경우 SK글로벌 회생의 담보로 맡겨둔 최 회장의 계열사 지분 전량은 매각돼 채권단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또 SK글로벌이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3.55%) SK생명(71.72%) SK해운(33.17%) SK C&C(10.5%) SK증권(14.47%) 워커힐호텔(9.68%) 등 계열사의 지분이 매각되면 계열사들은 독립적인 경영을 위해 출자지분을 정리하고 그룹은 해체될 전망이다.

▽문제는 SK㈜의 주주들=SK그룹 쪽에 막판 타협의 길이 남아 있지만 결정적인 장애가 남아 있다. SK글로벌 지원의 열쇠를 쥐고 있는 SK㈜의 이사회가 1대 주주인 크레스트증권 및 소액주주 등의 손해배상청구 등이 예고된 상태에서 섣불리 지원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계 3위인 SK그룹이 결국 해체과정을 걷는다면 이는 주주들의 권리주장에 의한 첫 번째 그룹해체가 될 전망이다. 과거에도 대우 국제 동아 등의 그룹이 해체된 적이 있지만 채권단의 주도 아래 ‘더 이상 생존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면서 해체가 결정됐다.

이와 함께 SK㈜의 1대 주주 크레스트증권이 SK글로벌에 대한 지원을 차단했다는 점에서 ‘외국자본’의 영향에 따른 국내 첫 번째 재벌그룹 해체라는 ‘기록’을 남길 전망이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계열사 대출금회수로 자금난 ▼

채권단과 SK㈜의 이해(利害) 대립으로 SK글로벌 사태가 악화하면서 SK계열사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 채권단은 29일부터 SK텔레콤을 제외한 SK 전 계열사에 대해 대출금 회수에 나서고 있어 자금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은행들도 대우 현대그룹에 이어 SK글로벌의 악몽에 시달리며 적잖은 손해를 입게 됐다.

▽SK계열사, 후(後)폭풍 견딜 수 있나=SK글로벌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SK㈜는 일단 국내 매출채권 1조4000억원, 해외 매출채권 6000억원 등 2조원의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다.

청산과정에서 일부 외상매출금을 회수할 수도 있지만 당장 현금 확보에 차질이 빚어진다. 게다가 은행권은 SK㈜가 원유를 수입하는 데 필요한 무역금융의 여신한도를 계속 줄이고 있다.

2금융권도 상황은 마찬가지. A투신운용사 관계자는 “SK㈜의 기업어음(CP)은 만기연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4∼5월에만 3300억원을 회수당했다”고 전했다.

SK㈜는 자산유동화증권(ABS) 5000억원 발행 등의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결국 SK㈜가 보유한 SK텔레콤 지분(21%)을 팔아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SK계열사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모든 은행들이 SK텔레콤을 제외한 SK해운 SK건설 SK케미칼 SK㈜ SKC 등 계열사에 대한 만기연장을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SK글로벌과 거래가 많은 SKC SK건설 SK해운 등이 집중표적이 되고 있다. 조흥은행은 이달에 SK해운의 당좌대출 30억원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은행권 추가손실 2조원 넘어=실사기관인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SK글로벌의 총부채는 9조7890억원, 청산가치는 3조8702억원(총부채의 39%)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청산에 따른 비용을 감안하면 청산회수율은 35% 수준으로 낮아진다.

채권단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담보로 내놓은 SK계열사 주식을 팔면 약 4500억원을 회수할 수 있어 채권회수율은 약 40%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은 대손충당금을 총채권액(대출+지급보증)의 10% 정도밖에 쌓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로 50%를 더 쌓아야 한다. 국내은행의 SK글로벌 총대출금은 5조2229억원이어서 약 2조6000억원의 추가손실이 예상된다.

한편 투신권도 SK글로벌의 회사채 9542억원을 갖고 있어 개인투자자에게도 피해가 돌아갈 전망이다. 대우채 사태 이후 채권형펀드의 시가평가제가 도입돼 SK글로벌 청산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개인들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명암 엇갈린 주가 ▼

SK글로벌 처리를 위한 채권단과 SK그룹간의 힘겨루기가 계속된 29일 한국 금융시장은 담담하게 반응했다.

이날 주요 금융지표의 움직임은 SK글로벌 파산 처리와 이에 따른 SK그룹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에 대해 비관적인 예상보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많이 반영했다.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7개 SK 계열사들의 주가는 명암이 뚜렷이 엇갈렸다.

SK㈜와 SK텔레콤의 주가는 외국인의 대량 매수에 힘입어 급등한 반면 SK글로벌과 SKC, SK케미칼의 주가는 급락했다. SK증권과 SK가스도 각각 내림세를 나타냈다.

증시 참여자들은 SK그룹이 해체되면 계열사들의 운명이 크게 엇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우량 계열사는 ‘그룹 리스크’에서 벗어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계열사들은 ‘그룹 프리미엄’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날 SK㈜는 5월 들어 가장 많은 546만여주의 거래량을 동반하며 3.9% 상승했다. 씨티그룹과 워버그증권에서 각각 73만여주와 56만여주의 매수 공세를 폈다.

SK텔레콤은 5월 들어 세 번째로 많은 41만여주가 거래되면서 3.05% 올랐다. 워버그, ING베어링, 메릴린치 창구에서 3만2000∼4만5000주의 ‘사자’ 주문이 쇄도했다.

채권단의 법정관리 방침이 결정되기 전에 이뤄진 전날 거래에서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던 SK글로벌의 주가는 하루 종일 큰 폭으로 오르내렸다. 개장 직후 하한가로 떨어진 SK글로벌 주가는 장중 한때 11% 남짓 오르면서 SK글로벌 회생에 대한 기대를 반영했다. 하지만 치열한 매매공방 끝에 결국 7.04% 떨어진 채 거래를 마쳤다. 이날 SK글로벌의 거래량은 1180만주로 5월 들어 최대였다.

한편 외국인은 이날 거래소에서 올 들어 가장 많은 2288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9%포인트 내린 4.11%를 기록했으며 원-달러환율은 6.50원 오른 1207.40원을 기록해 SK글로벌 사태의 새로운 전개에 대해 무덤덤한 반응을 나타냈다.

증시 전문가들은 SK계열사 간의 주가 차별화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SK㈜ SK텔레콤 등 우량 계열사들은 단기적으로 SK글로벌 회생 지원 부담이 우려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주가의 발목을 잡았던 부당 내부거래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비우량 계열사들은 홀로서기의 혹독한 시험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룹 신용으로 돈을 빌려준 채권 금융회사들이 일제히 회수에 나서면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한국기술평가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 규정을 적용받는 60개 SK계열사의 부채비율은 2002년 말 현재 199.31%에 이른다. SK그룹 계열사들의 부채비율은 삼성 67.84%, LG 152.05%, 현대차그룹 119.49% 등에 비해 훨씬 높다. SK㈜ SK텔레콤 SK엔론 등 부채비율이 낮은 일부 계열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부채비율이 200%가 넘는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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