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을 확보하라"…이라크戰-北核 장기화 기업들 투자보류

  • 입력 2003년 3월 10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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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비상경영에 대비, 수조원대의 현금성 자산을 앞다퉈 비축하고 있다.

북핵문제와 미국-이라크전쟁 등 결과를 알 수 없는 ‘시계(視界)제로’의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연초 잡아 놓은 투자 계획을 보류하고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것.

내수에 이어 수출경기마저 침체되면서 기업들은 현금 확보에 더욱 서두르는 양상이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비상 상황에 대비한 유동성 자산이어서 안정적인 운용이 최우선”이라고 말한다.

▽현금을 확보하라=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업종 대표기업들이 비축한 현금성 자산(현금 및 현금과 동일시되는 단기금융상품 유가증권 등) 규모는 수조원대로 추정된다.

현금성 자산은 설비투자와 부채상환 등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쓰고 남은 돈이기 때문에 용도가 딱히 정해진 게 없다. 거의 ‘비상용 대기 자금’인 셈이다.

대부분 작년에 장사가 잘 된 데다 올해 경영환경이 불투명해지고 일부 투자를 보류하면서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삼성전자가 비축한 현금성 자산은 작년말 현재 7조4000억원대에 이른다. 2001년말에 비해 무려 4조6000억원가량 급증했다. 현대자동차는 작년 1조4000억원가량을 더 쌓으면서 4조3000억원대로 불어났다. 기아자동차와 포스코는 각각 1조원대, SK텔레콤과 현대모비스는 5000억원대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 주우식 상무는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등 세계 초일류 기업들도 향후 경기변동과 잠재 리스크에 대비해 매출의 20%가량을 현금성 자산으로 비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익보다 안정이 우선=현금성 자산은 대부분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단기금융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은 작년말 현재 △현금 1조4093억원 △단기금융상품 4조2730억원 △유가증권 1조7448억원에 이른다. 당좌예금과 보통예금, 수시입출금식예금(MMDA), 머니마켓펀드(MMF), 수익증권, 1년미만 정기예금, 산업금융채권 등이 주 운용 대상.

포스코도 1조2800억원의 현금성 자산 중 MMF와 공사채형 수익증권에 9800억원, 예금(정기예금+외화예금) 2000억원, 채권에 1000억원이 들어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수익성이 너무 낮아 고민인 것은 사실이나 ‘비상시국’에 대비하고 안정적인 기업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안정 운용은 불가피하다”며 “자금 소요 시점을 염두에 두고 장단기 기간 조정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현금 확보, 이유 있다=포스코와 현대차는 올해 벌어 들이는 영업이익만으로 각각 1조2000억원, 1조275억원의 부채를 상환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 집행 예정인 반도체 및 LCD라인 투자자금도 작년 영업이익 중 일부로 충당할 예정.

삼성전자 주 상무는 “반도체산업의 경우 제품사이클을 한 번 놓치면 끝장이다. 업계를 선도하고 후발업체와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서는 적정 규모의 현금자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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