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저변 기류 변화조짐 "이젠 재료보다 수급"

  • 입력 2003년 2월 20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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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초 이후 증시 저변의 기류가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현대증권 오성진 스몰캡 팀장은 “모처럼 일할 맛 난다”고 말한다. 추천 종목이 잘 먹힌다는 것. 투자자들이 베팅 포지션에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몇몇 증권사 지점장들은 “북핵, 이라크전쟁, 새 정부 개혁정책 등 악재성 재료에 대한 질문이 뜸해졌다”고 전한다.

대우증권에서 시황을 담당하는 황준현 선임연구원은 “주식 잘 하는 한 친구가 지난주에 들어가지 못했다며 배 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회사 직원 몇몇은 지난주 주식형 수익증권에 절반을 넣었다고도 한다. 나머지 절반은 전쟁 직후 넣겠다는 심산. “증권으로 밥 먹는 사람들이 웬 간접투자냐”고 했더니 “지수가 600까지 오르면 바로 팔 것 같아서”라는 답이 나온다. 당분간 주가흐름이 견조할지는 몰라도 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는 얘기.

한마디로 이런 게 요즘 증시 분위기다.

“여간해선 잘 빠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 직전에) 한 번쯤 다시 망가질 가능성은 있겠지만….”(굿모닝신한증권 리서치센터 정의석 부장)

▽재료에서 수급으로〓‘한국 증시가 악재에 단련이 될 만큼은 됐다’는 점은 11일 무디스의 한국 신용전망 하향조정으로 주가가 570 선으로 밀린 이후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재료는 전체적으로 중립이었다. 이라크 위기의 평화적 해결 전망이 D램 가격 급락과 유가 급등 등 나쁜 소식과 숨바꼭질하듯 하루걸러 뉴스를 탔다.

그 사이 기관투자가들은 매수 우위로 전환해 12∼19일에 거래소에서 2951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기관들은 선물시장에서도 대량 순매수로 나와 외국인과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어느덧 주도주도 달라졌다. 그나마 단기 업황이 좋다던 철강 화학 업종 중심의 소재주가 밀려나고 전기전자 정보통신주가 컴백하는 양상이다. 요컨대 장세는 “재료, 주도주, 매수주체가 모두 없다는 ‘3무(無)장세’에서 악재의 위력이 바래고, 수급여건이 개선되면서 기관이 주도세력으로 나서는 상황이 됐다.”(현대증권 오성진 팀장)

증권가에서는 이달 중 국민연금 국민은행 증권유관기관 등 기관의 4000억여원 자금투입이 대통령 취임일인 25일 전후에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길게 본다면 들어갈 수도〓위태로운 듯 견조한 양상을 보이는 최근의 주가흐름을 기간조정으로 풀이하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 정 부장은 “기간 조정과 주가 조정은 반비례한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주가가 뜸을 들이면서 조금씩 저점을 높여가는 것도 조정의 한 가지 양상이라는 것.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위원도 같은 맥락에서 “한두 분기쯤 후에 팔아버릴 생각으로 나온다면 600 선 이하에서 얼마든지 주식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돌발악재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에 따른 단기적인 주가 출렁임은 충분히 감수하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지수 600 선은 매력적인 지수대라는 얘기.

한 가지 찜찜한 것은 1988년 이후 최대규모인 외국인의 선물 누적순매도 포지션. “국내 투자자들이 모르는 악재가 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20일엔 이중 7000계약 이상(마감 후 보충)을 환매수한 것으로 나타나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모습이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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