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탈 "사느냐 죽느냐"

  • 입력 2002년 10월 21일 18시 08분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KTB네트워크 사무실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침울한 표정의 사원들이 “일할 맛이 안 난다”며 하나둘 자리를 떴다. 명예퇴직자 명단이 발표된 직후였다.

이날 퇴직이 결정된 직원의 수는 45명. 20여명일 것이라던 회사 안팎의 예측을 훌쩍 뛰어넘는 수였다. 이번 구조조정으로 한때 270명이었던 직원 수는 11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생존전쟁 벌이는 벤처캐피털〓벤처 및 정보기술(IT)업계의 침체가 계속되면서 이들 업체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업체 대부분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사실상 ‘개점 휴업’으로 일손도 놓은 상태다. 올해 창업투자 업무를 중단한 회사 수만도 17개에 이른다.

2000년대 2조원이었던 신규 벤처투자 규모도 올 들어서는 1∼9월에 3000억원대까지 줄어들었다. 돈이 있어도 투자할 곳이 없고 투자한 곳에서는 이익 회수가 안 된다는 것이 벤처캐피털업체들의 고민. 최근에는 코스닥 시장의 불황까지 겹쳤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상황이 이렇자 벤처캐피털들은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아 다른 사업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 구조조정사업(CRC)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한 ‘포트폴리오 전략’.

지난해 말부터 CRC 부문을 강화해온 KTB네트워크는 올해 하반기 벤처투자 규모의 2배에 이르는 900억원을 CRC에 투자할 계획이다. 5월 인터넷 서점인 YES24와 와우북을 합병하는 등 6건의 인수합병(M&A)에 성공한 상태.

한국기술투자(KTIC)도 벤처투자에서 난 90억여원의 적자를 모두 CRC 투자 회수금으로 메울 정도로 CRC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모 영어학원과 영화사에 10억원씩을 투자했고 전시, 공연 등의 투자도 검토 중이다.

무한투자는 기존의 투자팀을 2개로 축소하는 대신 상장회사의 부실 주식에 투자한 뒤 공격적으로 투자를 회수하는 PRI사업에 뛰어들었다. 일신창업투자도 영화 외에 온라인게임과 드라마 등 콘텐츠 사업분야의 투자를 강화했다.

KTB네트워크의 권오용 상무는 “기술과 경쟁력이 있는 벤처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지만 벤처투자 분야가 살아나는 데는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며 “기술력 있는 벤처를 대기업과 연계시켜 연구개발비를 투자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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