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위기의 증권업계 갈길은… “뭉쳐야 산다”

  • 입력 2002년 10월 3일 17시 56분


떡볶이로 유명한 서울 중구 신당동의 6개 떡볶이 집이 올 6월 한곳으로 통합했다. 손님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주차장도 마련하고 70, 80년대 커피숍처럼 디스크 자키가 음악도 틀어준다. 이후 매출은 6개를 각각 합한 매출보다 30%나 늘었으며 이익률도 높아졌다.

신당동 떡볶이 집의 통합은 증시가 장기침체하는 가운데 수수료 인하경쟁 등 살아남기 싸움에 들어선 증권회사의 생존모델을 보여준다.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 함께 힘을 합하는 공존(共存)을 모색하는 것이다.

▽증권사 수익이 줄어든다〓삼성증권은 8월부터 온라인을 통한 중개수수료율을 대폭 내렸다. 월간 약정이 20억원을 넘으면 0.03∼0.09%만 받는다. 키움닷컴이나 겟모아증권 등 온라인 중개전문증권회사(Discount Store)들이 수수료율을 0.029%로 낮춰 고객을 빼앗아 가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업계1위 삼성증권이 수수료율을 낮추면서 증권사의 수수료율 인하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현재 평균 수수료율은 0.19% 수준. 99년의 0.33%에서 절반 가까이로 떨어졌다.

증시도 4월 중순부터 내리막이다. 하루 거래대금이 1∼3월에는 4조원안팎이었지만 8월부터는 2조원을 넘나들고 있다. 수수료율은 떨어지고 거래대금은 줄어드니 수수료 수입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게다가 증권회사가 자기자금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상품운용수익도 급감하고 있다. 4∼6월 증권사의 상품운용은 3091억원 손실. 작년 같은 기간 3576억원 수익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위탁영업에서 경쟁력을 잃은 일부 중소형 증권회사가 상품운용에 나섰다가 증시침체로 엄청난 손해를 입은 탓이었다.

▽쓸 곳은 많아〓금융감독원은 작년 9·11테러 이후 증권회사에 전산 백업시스템을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했다. 회사별로 최소한 70억원, 많게는 200억원 이상 추가부담을 안았다. 올해 8월에는 대우증권에서 계좌를 도용해 델타정보통신 주식 250억원어치를 불법으로 매수주문하는 사건이 터져 전자인증제 도입이 의무화됐다. 역시 추가비용이 예상된다.

잠재부실 부담도 만만치 않다. LG증권은 2000년 4월∼2001년 2월 세전이익이 780억원이었지만 2001년 3월에 4000억원의 손실을 반영해 256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삼성증권도 같은 기간 2430억원의 이익을 내다가 2052억원의 손실을 떨어 이익이 1044억원으로 줄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삼성 현대 대우 등 5대 증권회사의 잠재부실은 6월말 현재 6699억원이나 된다.

▽거꾸로 가는 구조조정〓외환위기 이후 기업과 은행·종합금융·신용금고 등 금융계는 엄청난 구조조정의 회오리를 겪었다. 하지만 증권회사는 더 많아져 구조조정보다는 몸집 부풀리기가 이뤄졌다.

3월말 현재 국내 증권사는 44개로 97년말(36개)보다 8개 늘었다. 영업점은 1260개에서 1673개로 32.8%, 임직원은 2만5098명에서 3만5564명으로 41.7% 증가했다. 게다가 외국증권사도 17개나 된다.

메리츠증권 윤두영 이사는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이 생명보험은 77.3%, 손해보험은 54.1%, 신용카드는 57.6%, 은행은 38.2%인 반면 증권은 27.6%에 불과하다”며 “증권업계는 절대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라고 꼬집었다.

▽합치고 제휴하거나 전문화가 살길〓굿모닝신한증권 도기권 사장은 “굿모닝과 신한증권의 합병으로 전산투자에서만 매년 100억원 이상 절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복되는 인사 등 백오피스 관련 인원 140명을 영업직으로 재배치해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 증권회사도 신당동 떡볶이 집처럼 합치는 효과가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증권사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합병이나 업무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 증권사는 크게 3개로 나눠진다. 삼성 LG 현대 대우 동원 동양 SK 한화 등 대기업 계열사와 우리 굿모닝신한 하나 등 은행 자회사 및 신영 유화 신흥 등 개인대주주 회사 등이 그것.

메리츠증권 황건호 사장은 “중소형 증권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인수합병(M&A)을 추진하지만 팔려는 곳은 없고 사려고만 하기 때문에 M&A가 이뤄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미래에셋증권 박현주 회장도 “미래에셋증권은 매년 전산투자에만 150억원이 들어간다”며 “5개 회사가 300억원을 들여 전산시스템을 만들고 함께 쓰면 450억원을 절약할 수 있는데도 자사이기주의 때문에 협조가 안돼 안타깝다”고 밝혔다.홍찬선기자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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